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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24. 2023

청소가 좋아진 30대 백수

화장실 청소만 빼주세요. 제발요.

나는 집안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타고난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드니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청소가 재밌다. 하는 것이 즐겁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아마도 청소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나는 마지막 1년을 청소업체에서 일을 했다. 7개월은 간단한 시설&수리 업무를 보면서 파견을 나갔었고 나머지 5개월은 관리직으로 실질적으로 청소를 하고 교육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업무를 했다. 결과적으로는 퇴사를 했고 지금은 퇴직금을 기다리고 다른 일을 함께 알아보고 있다.


처음부터 청소라는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집에서 마이너스의 손을 가지고 있다. 남들보다 악력이 센 편이기도 하고 힘 조절을 잘 못하는 편이라서 무언가 고장 나서 내가 고치려고 분해를 하거나 수리를 하려고 하면 꼭 고장 나는 일이 대다수였다. 작년까지 독립을 한다고 밖에서 혼자 살다가 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집에 오자마자 한 일이 싱크대 수전을 고장 낸 일이었다. 수전을 고장 내려고 일부러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수전을 뜯어서 고장 내야지-!라고 생각할까. 절대로 고장 내려고 한 것은 아니고 유튜브에서도 수전 조립 방법을 꼼꼼히 찾아봤고 퇴사 전 간단한 시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면서도 수전이 고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주 옅은 지식이 있었을 뿐이다. 정확히는 수전을 모조리 고장 낸 것은 아니었고 내가 예상한 것은 싱크대 하부에 있는 나사나 조임이 풀어져서 그것만 조이면 되는 줄 알았지만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조임쇠는 더 이상 돌아가질 않았다. 악력이 좋은 편인데도 그 정도로 돌아가지 않아서 고무장갑을 끼고도 해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 오자마자 사고를 쳤고 수전을 교체하는데 12만 원이라는 돈까지 들어갔다. 전문가도 4-50분 걸리던 일을 네가 왜 건드려서 일을 만들고 키우고 수습도 하지 않은 무책임한 일을 하냐는 핀잔을 들었어야만 했다. 나는 별 수 없었다. 내 지식으로는 그렇게 하면 될 줄 알았으니까.


그렇게 사고를 치고 난 뒤, 나는 거실과 부엌, 창고, 베란다, 안방 등을 누구보다 꼼꼼히 청소기를 돌렸고 너저분한 것들을 모조리 정리를 했다. 이게 1년 동안 청소업체에서 일을 한 효과인가? 싶었다. 하지만 화장실 청소는 정말 싫어한다. 변기를 닦는 것도, 배수관이 막혀 머리카락을 제거하는 일이나 물 때가 끼어있는 것을 청소하는 것도 곰팡이가 슬어있는 타일 등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청소는 나에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너무 더러운 화장실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화장실은 정말 호텔급으로 깨끗하지 않으면 손이 가질 않는다.


그렇게 30대 백수의 삶을 맞은 나는 나 나름대로 청소의 철학을 가지고 좁은 집구석을 구석구석 청소하기 바쁘다. 청소를 하고 청소기에 쌓인 먼지들을 비우고 쓰레기통이 꽉 차거나 분리수거하는 날이 다가오면 혼자 도맡아서 분리수거를 한다. 나는 이렇게 집안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도 아주 큰 약점이 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질 않고 요리를 잘 못한다. 내가 제일 잘하는 요리는 국물 봉지라면 끓이기, 비빔면 끓이고 비비기, 간장계란밥 등 밖에 없다. 스팸 + 라면 수프를 넣은 부대찌개도 가능하긴 하다. 참 애매하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한 가지의 일을 깊숙이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얕게 다양한 일을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지식도 남들과 비교했을 때 전문지식이 없다.


아, 청소는 누구보다도 깨끗하게 할 자신이 있다. 화장실만 뺀다면 나는 어디든 청소로도 돈값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일본에서 청소를 시작하면서 돈을 벌고 밥값을 하고 돈을 벌고자 했지만 국적 문제도, 비자 문제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이다. 일본은 전체적으로 방이 좁고 화장실이 청결한 편이다. 여행을 몇 번 가봤지만 이상하게 화장실은 항상 쾌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본으로 넘어가서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혀 무너져있는 상황이다.


나는 백수의 삶을 맞이했지만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 정확히는 청소를 하면서 깨끗한 집을 유지하는 게 기분 좋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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