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어려서부터 나를 너무나도 괴롭히거나 행복하게 만들어주거나 의지를 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물론 모두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겠지만 술이라는 것이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을 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하는 순간들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 있는 술이라는 것은 나의 인생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 가장 고마운 친구였고 아직까지도 두터운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나는 얼마 전 퇴근길에 있는 횟집에서 술을 마셨다. 요즘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복잡하고 나도 모르게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꿈틀 올라오는 것을 보아하니 요즘의 삶이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불만도 생겨 쌓이고 있는 것 같다. 딱히 불만을 어떤 것이다, 누구 때문에 그런 불만이 생겼다 라는 것은 단연코 아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만이 점점 턱 밑까지 차오른 것 같은 기분이다. 누군가 톡-하고 건드리거나 찌른다면 방대한 양의 불만과 스트레스, 불편하고도 부정적인 마음들이 쏟아져 넘칠 것만 같다.
횟집에서 술을 마실 생각은 없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그 무수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듯이 끼여서 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 꽤나 불편한 사람이라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 그러고 계단까지 두 칸씩 뛰어올라간다. 마스크를 쓰고 헐떡이면서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골목 사이사이로 가는데 출근길엔 영업을 하지 않는 피자집이 저녁 장사를 시작했는지 코를 자극하고 식욕을 일깨우는 향긋한 피자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아마 거기서부터 시작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조금의 예열이 된 후, 곧장 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가려는 순간 오른쪽엔 횟집이 눈에 보였다.
내가 사는 집 근처의 횟집은 3개 정도가 있는데 두 곳의 느낌이 너무 밝고 노량진 수산시장과 같은 분위기라 갈 때마다 눈을 찡그리게 되는 것 같다. 특유의 그 수산시장 비린 냄새와 물 냄새, 노후되거나 물때가 낀 인테리어 등 그런 것들이 나에게만 눈엣가시가 되어 어느샌가 내 시야를 좁히곤 한다.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거나 음식만 본다거나 시야가 좁아지긴 한다. 난 더러운 것을 싫어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것은 화장실이 더러운 것이다. 정말 정말 너무 싫다. 그래서 내가 혼자 사는 집도 화장실은 깨끗한 편이다. 뭐, 구석에 끼는 물때는 어쩔 수 없겠지만.
술집에 들어갔는데 남녀 한쌍이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열댓 개가 있는 테이블 중 한 테이블만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외에는 파리가 날아다니는 건지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보였다. 쭈뼛쭈뼛 들어가서 포장이 되냐고 물어보고 메뉴판을 보지만 혹하는 것이 없어 그냥저냥 멍 때리면서 있다가 불현듯 포장을 해서 집에서 먹을 생각에 뭔가 머릿속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았고 기분 좋을 일도 그리 많지 않았다. "먹고 가도 되나요? 혼자인데.."라고 말을 했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된다는 말을 듣고 최대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자리에 가서 소주 하나와 광어 가장 작은 사이즈로 달라고 했다. 서른한 살이 될 때까지 집 밖에서 혼자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무언가에 이끌려 혼자 술을 먹을 용기가 생긴 듯하다.
역시 tv와 내가 즐겨보던 맛있는 녀석들이나 음악이 없으니 술을 마시는 건지 아니면 이게 벌칙인지 헷갈리기 시작한 때부터 술에 취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먹은 술은 생각보다 가득한 취기를 가져다주었다. 별 소용없는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나도, 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