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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17. 2023

드디어 부산으로 내려가게 됐다.

결국 결정이 나버렸다. 6월 말이면 나는 서울이 아닌 부산에 몸을 담고 있겠지. 사실 서울이냐 부산이냐 결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지만 지금 가족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같은 금액으로는 서울권에서 반지하나 1층, 엘리베이터 없는 4-5층 그리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고 창문을 열면 바로 앞 건물 때문에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그런 좁디좁은 방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생각보다 꽤 큰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사실 5월부터 계속해서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내가 급작스럽게 부산으로 내려가서 생활할 정도까지의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가족들과의 불화가 발생했고 그것이 곪고 곪아 아주 크게 터져버렸고 상처가 흉터로 남아 평생 간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컸다. 그래서 반 강제로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물론 가족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는 못한다.


내가 부산으로 가서 살겠다는 생각도 마음도 의지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좁디좁은 집에서 마주치더라도 서로 아는 척을 하지도 않고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마주치면 마주치는 대로 모르는 사람처럼 외면한다. 그리고 내가 지내고 있는 거실을 사용하질 않는다. 각자의 방이 있고 나는 독립을 했다가 1년 만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내 방이 없었고 베란다 창문 바로 옆에 라꾸라꾸 침대 하나를 겨우 놓고 그곳에서 지낸다. 그런 이유로 아침마다 환하게 뜨는 햇빛으로 인해 나는 제대로 잘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물론 내가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것도 하나의 영향이긴 하겠지만 아침마다 눈이 부셔서 잘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곧 나가는데 암막커튼을 사서 친다거나 하는 거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물론 내 상황을 알았더라면 가족 중 누구라도 그런 배려쯤은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나를 버린 가족들이니까 나도 이제 그들을 버릴 거다.


호적을 파던 가족이 아닌 관계를 이어나가던 나는 상관없다. 가족 중 누가 죽어서 연락이 오더라도 나는 다시는 찾아오지도 연락을 하지도 않을 거다. 이미 우리 가족은 파탄난지 오래되었고 이런 내가 너무하진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들이 나에게 들이민 칼들과 총으로 나의 마음은 이미 떠난 지 오래되었다.


뭐, 정말로 부모가 상을 입어 장례를 치러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마지막으로서의 자식의 도리는 하겠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을 거다. 부모는 갑, 자식은 을이라는 한심하고 썩어빠진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내가 뭣하러.


아무튼 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곧 부산으로 내려가면 정착을 하고 일도 구하고 지금보다는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월세가 70만 원이라는 사실이 아직까지는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지만 바다 근처라는 이유도 높은 층에 있는 오피스텔이라는 이유도 모든 것을 종합하면 내 삶이 지금보다는 더 아끼고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하는 상황이겠지만 그마저도 나는 괜찮을 것 같다.


일단 4개월 살아보고 연장 여부를 정하겠다고 했으니 4개월 살아보고 안되면 훨씬 저렴한 곳으로 다시 이사를 가던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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