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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Oct 20. 2023

정말 오랜만에 정신과를 다녀왔다.

병원을 다녀왔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과를 다녀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녀온 중곡동의 대형 병원에서 의사를 잘못 만났고 간호사분들에게 정중하게 담당의 선생님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데 가능하면 선생님을 교체해 주실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50대를 갓 넘긴 것 같은 우리 엄마 나이대였는데 정중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다. 저 선생님 능력이 좋아서 여기 병원으로 발령받으셨고 선생님이 능력이 좋으시니 바꾸지 마시고 그냥 받아보시라-라는 말이었다.


사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예민하거나 상대방의 감정 정도는 어렵지 않게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 같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몇 마디를 나누어보고는 느낌이 왔다. 이 선생님은 정말 나랑 안 맞는구나 아니 오히려 안 맞는 게 아니라 이 선생님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 선생님은 그 병원에 처음으로 발령을 받았고 그날이 심지어는 첫 근무날이었다. 그리고 나를 만났는데 한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나온 문장들 중 아직까지도 생생한 문장은 "선생님 정도면 여기에서는 그렇게 무거운 병은 아니에요"라는 말이었다.


사람마다 짊어진 병의 무게를 감히 누가 저울질 할 수 있을까. 누가 더 아프고 누가 덜 아프고를 누가 정하는 걸까. 그 말을 한다는 주체가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라는 게 정말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 의사는 정말 아니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간호사분들에게 요청을 했는데 그마저도 거절을 당해서 그 이후로 정신과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유명하다고 하는 곳은 당연히도 3-6개월은 대기시간이 필요했고 초진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장 마음이 아파서 죽어버릴 것 같은데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것도 아이러니였다.


그러다 마침 전날 여자친구가 예약해 두었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 병원도 11월이나 12월까지 예약이 모두 잡혀있어서 예약만 걸어두고 다른 병원들을 알아보다 결국 다른 병원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다음 날 한 타임의 예약이 빠져서 오시겠냐는 연락이었다. 이미 대학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간 여자친구는 나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서 얼른 예약을 하고 방문을 하라고 했다. 정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3-4개월을 맨 정신으로 술로 버틸 뻔했는데 겨우 막차를 탄 기분이었다.


그리고 오늘 병원에 방문을 했다.


생각보다 요즘 정신의학과는 절차도 간단하고 아이패드로 검진을 하는 게 새삼 내가 세상을 그래도 오래 살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기본적인 문진을 작성하고 발목과 팔목에 맥박을 체크하고 기본적인 초진 상담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부터 언제 자해를 했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모든 것을 이야기를 했다. 사실 진료가 끝나면 바로 일을 가야 했었어서 25분 정도밖에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듯함이었다.


충분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기다려주셨고 나를 배려해 주시면서 말하는 게 말투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사려 깊은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들 중 기억에 남는 말은 "왜 이렇게 아프신데 병원을 안 가셨어요?"라는 말에 나와 맞지 않는 의사 선생님들이 내 병을 아무것도 아닌 병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마음이 닫혀서 가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 대답에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덤덤하게 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라고 말씀을 해주셨고 20분밖에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진행을 하겠다고 해주셨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들도 너무 빠르게 지나갔고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약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약을 받아왔다. 하루에 3번 먹어야 하고 취침 전에 먹어야 하는 약은 술과 함께 먹으면 어지러움이 나타날 수 있어서 최대한 술과는 먹지 말라고 했고 술을 먹었다면 취침 약은 먹지 말라는 말까지 해주셨다.


오랜만에 간 정신과에서는 내 생각보다 더 따듯한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지출이었지만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상담을 받고 약을 먹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요즘은 정말이지 부서지고 망가지고 있다. 그걸 어떻게라도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조차 대견하다.


사실 나아질지 나아지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기 전에 뭐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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