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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Nov 29. 2023

새벽에 다시 술을 찾게 되다니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빠도 건강히 일을 하고 계셨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컴퓨터로는 의미 없는 예능 영상들만 틀어두고 술을 마시다가 의자에 기대서 잠에 들고 깨어보니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는 아빠가 출근 준비를 마치시고 출근을 하실 때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까지 마치고 나서 잘까 술을 더 마실까 하다가 자는 것보다야 술이 더 끌리는 그 마음 때문에 술을 더 마시다가 오후즈음 되어서 잠자리에 들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밤낮으로 술을 마셔야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게 좋았다. 아니 좋았다기보다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더라도 연락이 쉽게 오질 않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집 밖으로 나갈 일이 많이 없었다. 한 번씩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구제시장을 나가서 옷 구경을 한다거나 사람 구경을 하고 돌아오곤 했었다. 그마저도 서울 근교에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지금은 서울로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니 본가로 집을 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오며 가며 지하철과 버스를 병행해야 하고 광역버스까지 타야 하는 탓에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집에 잘 가질 않는다.


그런 내가 갑자기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자는 게 이유였을까 아니면 그냥 술이 부족해서였을까 새벽이나 이른 아침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매일 새벽 늦게 마다 일어나서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애매하게 술을 마시거나 하면 잠을 자기가 힘들어서 다시 잠을 청하고자 혹은 그냥 술이라도 마시는 게 낫겠다 싶어서 술을 마신다.


독립을 해서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시간과 상관없이 눈치 보지 않고 술을 원하는 순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좋지만 이렇게 밤낮 가리지 않고 술 생각이 난다는 것은 간이 맛이 가서 자꾸만 술을 원하는 건지 혹은 내 정신상태가 썩어서 자꾸만 술을 생각나게 하는 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게 가장 심각한 고민이긴 하다.


겨울은 일이 없다. 이 일의 장단점은 겨울에는 죽도록 춥고 여름에는 죽도록 덥다. 날씨와 시간의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린다. 겨울에는 일이 정말 없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이 춥디 추운 겨울을 버텨내야만 한다. 지출을 극한으로 줄여야만 하고 월세와 관리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나이도 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에서 지원하는 족족 채용이 이루어지는 편은 아니다. 20대에게 밀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선택지가 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일했던 직장에서도 채용 관련한 담당자와 친분이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적이 있는데 1순위는 20대 초반과 관련 아르바이트 경력이 있는 사람이고 2순위는 그나마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 3순위는 위치나 지역이 가까워서 펑크낼 우려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것을 따지자면 나는 1,2,3 순위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일을 하고 싶지만 원하는 일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이 나이를 먹고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와는 맞지 않다고 일을 금방 그만두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일이 자기 자신과 맞지 않아서 그만두는 것을 두고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새벽 6시 25분이다.


보통 일이 많았을 때라면 이 시간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를 하고 준비를 하는 시간인데 애매한 술을 마시고 애매한 시간에 잠에 들었고 애매한 시간에 깨서 다시 자려고 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무의미하게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한 시간 동안 보고 15분 정도 잠에 들고자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는데 방 안의 냉기와 내 몸에서 나오는 온기, 이불을 덮었을 때의 온기까지 더해져서 덥다 춥다를 반복하는 과정 때문에 쉽게 잠을 잘 수 없었다.


이 겨울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것이 옳은 선택인지조차 이제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정신적으로 상당 부분 피폐해진 것 같다. 나는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나름 합리적인 일이 아닌 부분에서만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불안과 걱정, 말이 많아져서 내 안의 화가 많아진 건지 뭔지도 모르겠다.


일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것 또한 문제고 이 판단과 결정을 내 손으로 한 것에 대한 후회가 스멀스멀 나를 잡아먹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왜인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하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서 도망쳐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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