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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05. 2024

나의 도피처, 편의점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이 8월 10일 자로 끝나서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이쪽 동네는 매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당근으로 올려놨는데 조회수만 3천 회가 넘어가고 하트가 28개나 찍히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사실 이 동네가 예전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도 맞지만 새로운 지하철 노선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큰 ktx 역이 인접해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 사람들이 더 몰리는 것 같다.


나도 이 집 말고 다른 집을 알아보려고 부동산 매물 어플을 가끔씩 들어가서 한 번씩 보지만 정말 매물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강아지가 가능한 방은 더더욱 없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환경도 너무 좋고 교통편도 괜찮아서 이 집을 한번 더 계약을 하고 싶지만 내가 처음 월세 계약을 맺을 때 봤던 집주인이 이 집을 매매로 내놓았다고 했고 새로운 집주인이 집을 보고 가기도 했다. 이전 집주인은 이 동네에서 요식업을 하고 있는데 그게 잘 되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세를 받으면서 이것저것 고쳐달라는 나의 연락이 내심 귀찮았던 걸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에 대한 애정이 점점 식어가고 있고 어제는 이 집을 계약할 때 옆에 있었던 중개사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미리 연락을 했고 본인들도 세입자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협조 좀 부탁드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무수히 많은 상황들이 직면해 있지만 이 모든 것을 대피하기 위해서는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는 게 좋다.


이 건물 1층에는 편의점이 있는데 이 편의점 사장님은 항상 테이블 2개와 의자 6-7개 정도는 항상 꺼내놓으시는데 편의점 앞 여유공간이 있어서 그런지 이쪽을 활용하시려고 항상 꺼내두신 것 같은데 이게 집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너무 좋은 것 같다. 항상 테이블을 쓴다고 양해를 구하고 사용하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사장님이나 직원분이나 아 안 돼요-라는 듯한 뉘앙스로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아 그럼요 쓰세요-하고 오히려 테이블과 의자를 한 번씩 닦아주시기까지 하신다.


내 입장에서는 이곳만 한 곳이 없는데 매일 새벽마다 내려와서 술을 사고 테이블을 2-3시간 차지하고 하루는 핸드폰으로 죽치고 있고 하루는 노트북을 들고 와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은 있다. 무언가를 사드리고 싶지만 이미 편의점을 몇 년째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에 뭘 드리더라도 사실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길은 없긴 하다. 편의점에 다 파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편의점에서 구매해서 매출이라도 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매일 마주치는 분들이라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뭘 해드리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 한 번씩 편의점에 내려와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곤 하는데 12시가 넘어가고 편의점으로 내려오면 보통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고 깡소주를 먹어도 누군가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는다. 난 그런 부분이 너무 좋다. 물론 충전할 수 있는 멀티탭까지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렇게 혼자라도 숨 쉴 수 있는 도피처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이 생활도 8월이 되면 끝나겠지만 그때까지는 그래도 조금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라도 보내지 않으면 정말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왜 나만 힘들어? 인생이 나만 힘들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내 인생을 내 손으로 망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 손으로 망쳤기에 누군가를 탓할 수 없다. 이렇게 매일 버티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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