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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ug 17. 2024

좋아하는 것도 없고 의욕도 없고

 날이 더워서 그런가 일을 다녀올 때마다 정말 기진맥진하다. 한 번씩 무리를 하면 꽤 크게 트는 입술도 어렸을 때는 그냥 자면서 입을 벌리고 자는 게 습관이라 그러다 한 번씩 찢어진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고 세상을 살아가려는 속도가 느려져서 그런지 입술이 크게 트는 이유는 무리를 해서 몸이 피곤할 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였다.


오른쪽 아랫입술이 크게 찢어져서 피가 나고 물이나 혓바닥이 닿을 때마다 따가울 정도로 크게 찢어지곤 한다. 아무리 바세린이나 립밤을 발라도 금방 돌아오질 않고 며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어줘야 그나마 좀 괜찮아지는데 이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도 참 웃기다. 어려서는 왜 입술이 찢어지는지 이유도 모르고 그냥저냥 입술이 안 좋아서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도 나이가 들긴 하나보다.


20대 때 살던 세상보다 지금이 더 살기 어려워진 것 같다. 물론 회사에서 동료들이나 상사들이 주는 일, 시키는 일만 하면 되었던 상황에서 지금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야 한다. 물론 같이 일해주는 사장님인 여자친구가 있고 여자친구가 대부분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지만 주변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주는 스트레스부터 갑질, 눈치를 주는 것까지 모든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있다. 일이 없으면 일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일이 들어와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일도 스트레스를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마음을 먹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남들이 뭐라 하던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창업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 초보 사장님들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보다 먼저 일을 시작했던 사람들도 힘들다 그러고 불경기라고 하지만 막상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는 외제차에 돈을 많이 번 티를 낸다. 가령 일하는 집기들이 달라지고 뭐 그런 식.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굉장히 열심히 바쁘게 사는 것 같은데 왜 우리만 이렇게 일이 없어서 쩔쩔 매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일을 하러 가서도 눈칫밥 신세로 쭈그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 같다. 이건 과연 나이가 어려서일까 아니면 노하우나 경험이 없어서 무서워서 덜컥 불안해서 그러는 걸까.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이런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더해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 여파로 무기력해지고 뭔가를 해도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이렇게 해서 스트레스를 달고 살 거라면 차라리 알바나 회사를 들어가서 조용히 시키는 일만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은 하지만 또 내가 억지로 해야 하는 것과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또 고민을 반복한다.


이렇게 해도 싫고 저렇게 해도 싫다. 요즘의 나는 그렇다. 뭔가를 해도 그렇다 할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고 이제 조금씩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부족하다.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 부족해서 부족함을 이겨내려고 기를 쓰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되려 무기력해지고 나 자신을 하나 둘 내려놓는 것 같기도 하다.


음. 비유를 하고 싶지만 비유 자체가 되지 않는 일들이라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무슨 말이라도 하면 혹여라도 일에 지장이 생길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항상 신경을 쓰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너무나도 답답하다. 누군가에게 풀어낼 곳도 없고 그렇다고 이건 잘못된 거니 고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도 하지 못하는 이 생태계가 외부인이 봤을 때는 즐겁고 여유롭고 자유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그것도 아니다. 되려 더 악취가 나고 더럽다.


내가 무기력 한 이유는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이런 감정들이 하나의 인간을 무기력과 의욕 자체를 빼앗아갈 수 있는 걸까?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을 봤다. 90년대 작품이라 굉장히 그림체가 기괴하고 스토리 자체도 심오하고 나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가는 스토리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은 굉장히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와 본인을 제외한 타인의 감정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인데 원래 나는 애니메이션을 안 좋아한다. 하지만 인사이드아웃 같은 귀여운 애니메이션은 이따금씩 한 번씩 보곤 하지만 1회당 2-30분이나 되는 영상을 한 자리에서 오래 보는 것 자체를 안 좋아해서 안 보는 편인데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은 왜인지 몰라도 주인공과 나를 동일선상으로 놓고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몰입이 더 잘됐던 걸까 싶기도 하다.


주인공도 마지막에 나는 쓸모없어, 죽고 싶어, 도망치고 싶어라는 말을 꽤 하는데 그 모습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더 몰입이 됐던 것 같다. 그래도 또 정주행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림체가 너무 기괴하고 눈이 아플 정도의 연출이 정신병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해괴하고 무섭다.


어떻게 극복하는 걸까. 무기력이나 인생의 목표가 없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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