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자신감이랄 것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감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도 낮을뿐더러 나 자신을 향한 자기혐오가 굉장히 오랜 시간 두껍게 쌓여있던 터라 자신감의 문제보단 자존감과 삶이라는 것에 아주 비관적이었다. 물론 지금은 정점에 달해 아무것도 못하고 뭘 하더라도 뿌듯하거나 보람차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저 하루살이처럼 시간만 소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매일같이 든다. 몇 개 이야기를 해보자면 아직 지갑 사정은 괜찮다. 물론 코인 물린 걸 빼면. 그래도 그럭저럭 쓸만한 돈은 있고 무언가를 위해 돈을 쓸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돈을 쓰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자신감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만원을 쓰더라도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고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쓴다는 생각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내 생일이어도 생일 축하를 받고 선물을 받는 것보다 받지 않고 상대방의 생일에도 챙기지 않는 것이 나이를 든 사람들이라면 그게 윈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안 그래도 없던 자신감이 무너져버렸다.
아주 어렸을 때는 가족들이 치킨을 먹자고 주문을 하라고 했을 때 나는 전화도 못 할 정도로 무서워했다. 근데 이걸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 나니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는 아, 다른 사람도 다 큰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로 주문하는 것이 어렵구나, 전화를 한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말을 하지 못하겠지만 나의 가족은 항상 떨떠름했다. "그것도 못해?", "남자가 되어서 말이야~~"를 시작으로 끝도 없는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집 밖을 나서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거나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긴다면 막상 긴장부터 하고 본다. 긴장인지 공포인지 불안인지 모를 정도로 되려 겁은 먹어서 경계심이 99%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나 말을 들어야 할 때 나는 가장 공포스러움을 느낀다. 그 사람이 나에게 좋은 말과 친절을 겸비한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의와 매너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말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이는 것. 듣는 둥 마는 둥 대체로 집중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애써 무시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나에게 큰 상처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는 남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나를 보고 무례하게 말을 하는 것을 상대방이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리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나 자신이 튼튼하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하지 않고 건강하고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람처럼 마음과 정신을 가꾼다면 그 누가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나 자신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자기혐오로 생각하고 나 자신을 너무나도 싫어하기에 그게 불가능해서 이 세상의 모든 위험과 위협에 놓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최근에 나 자신을 지킬 일이 있었지만 그때도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보다는 상대방에게 그 순간이라도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내 감정과 기분을 뒤로하고 상대방을 먼저 위하는 선택을 했다. 물론 굉장히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나도 이렇게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점점 세상이 좁게만 느껴지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죽을 날이 다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