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아마도 몽유병

by empty

어제는 하루 종일 부실하게 먹어서 모든 기력이 제로에 수렴해있었다. 식욕이라고 할 것이 없어서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잠을 잤고 어찌어찌 점심을 챙겨 먹긴 했다. 그마저도 급하게 눈치를 보면서 먹었던 터라 온전한 한 끼 식사는 아니었다. 저녁은 먹지도 못했고 그 상태로 집에 도착하니 저녁시간이 모두 흐른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대로 잠을 잘 수도 있었지만 저녁을 먹지도 않았고 하루 종일 고생한 나 자신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자 먹을 것을 사 왔다.


그렇게 새벽 한 시가 지나고 두 시가 다 되어갈 때 즈음, 더 이상 피곤해서 못해먹겠다-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양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하루가 너무 길고 피곤했던지라 알람을 못 듣고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알람을 몇 개나 맞추어두고 알람 소리는 가장 크게 설정해놓고 잠에 들었다. 에어컨을 틀고 자고 싶었지만 결국 또 새벽에 깰 것 같아서 에어컨은 끄고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잤다. 반대쪽 건물에서는 우리 집이 보이지 않는 구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때부터였다.


알람 소리에 깬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쩌다 보니 일어났다. 일어나서 당연히 출근 준비를 하려고 화장실에 가서 온수를 틀고 씻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15분 정도를 씻었을까. 화장실에서 나와서 머리를 말리고 정신을 조금 차려보니 너무나도 어두웠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머리 말리는 것을 멈추고 허겁지겁 핸드폰을 켜서 시계를 봤다. 새벽 세 시가 갓 지난 시간이었다.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눈앞이 막막했다.


단순히 이 시간에 일어나서 씻고 회사 갈 준비를 했다는 게 너무 웃겨! 하하!라고 호탕하게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건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몽유병을 의심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게 정말 몽유병인지 몽유병이란 것이 생기기 직전의 증상 표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기에는 그 수준이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병원에 굳이 가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잠을 잘 때 혼잣말을 하거나 웃으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거나 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오늘 겪은 일은 정말 너무 무서웠다. 마음이 불안정한 건지, 정신이 불안한 건지 어떤 부분들이 불안한지는 모르겠다.


사실 나는 잠들기 전 보거나 겪은, 생각하는 것들이 꿈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있다. 불안하면 불안한 꿈을 꾸고,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꾼다거나 오롯이 내가 느끼는 감정이 꿈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그런 사태를 겪고 멍하니 머리를 다 말리지도 못하고 침대에 다시 벌러덩 누웠다. 너무 무섭기도 했고 1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시간에 일어나서 씻을 준비를 하고 회사를 갈 준비를 했던 건지, 강박으로 핸드폰을 자면서도 확인하고 무언가 불안해서 핸드폰을 수시로 계속 보는 내가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보지도 않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는 것이 수상하기도 하고 영 찜찜하다.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실 아무 일도 없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한테 내 상황을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고 싶은 것이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갑자기 빨간색 불이 들어온 걸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싶다. 늘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아무 일 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한 부메랑이 나 자신에게 돌아온 걸 지도 모르겠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다 정말 무너지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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