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 수치는 증명할 수 없지만 출퇴근을 하고 출퇴근 루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꼭 20대들이 주를 이루고 3-40대는 없는 것 같다. 그 정도로 1인 가구의 성지가 되어버린 곳이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돌아온 주말에 집에서는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좁디좁은 집을 청소하고 쉬다가 본능이 이끄는 대로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마실 음료수와 물,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먹을 음식을 장을 보러 나갔는데 그 시간대가 참 애매해서 그런지 술집이나 음식점, 고깃집 등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지나쳐온 음식점들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저 그런 음식점들 옆을 지나가는 것뿐이었는데 그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너무 부러웠던 것이 하나 있다. 2명 이상의 사람들과 술집과 음식점을 가서 먹고 놀아보는 것이 꿈이었다. 물론 그러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그 인원들과 그 모임은 나와 결이 다른 형태였어서 내가 온전히 즐기거나 느낄 수 있는 모임이 아니었다. 서른한 살이 된 지금 내가 원하는 모임과 원하는 인원들의 모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요즘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것을 너무 많이 느낀다. 사람들이 많은 음식점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가고 그 시선이 꽤나 오래 집중된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임 자체에 포커싱이 되어있는 기분이랄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분위기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의 골목을 벗어나 조금 넓은 골목으로 가면 고깃집부터 시작해서 카레, 해장국, 맥주 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는데 산책을 하려고 조금 넓은 골목을 거닐다 보면 항상 사람들이 많다. 저녁 8시 이후에는 사람들이 항상 가득해서 그 모습을 보는 내가 창문에 비추어 보일 때가 많은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영 좋지만은 않다. 나는 늘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나는 저런 삶을 즐길 수 있는 삶이 아닌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가득해서 내가 쳐낸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탓할 수 없고 그 화살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지만 그것을 후회하거나 책임을 회피하진 않는다. 내 손으로 내가 싫다고 나와 다르다고 내가 쳐낸 것이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지만 결국 그런 화기애애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들을 보는 순간들이 오면 나는 한 번씩은 무너지는 것 같다.
'우와, 부럽다. 엄청 화기애애하고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옷도 꾸며 입었네'하는 나의 관찰력에 놀라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 관찰력이라는 것이 더 높아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가질 수 없으니 관찰하는 것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슬퍼 보이는 이유는 뭘까.
나는 아직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진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의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봐도 '아, 나는 아직 할 것이 있지'라고 하며 있어 보이는 척을 하지만 결국 크나큰 월세를 내야만 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척을 해야만 하고 관심 없는 것을 관심 있는 척을 해야만 하고 하기 싫지만 하는 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여러 순간들부터 생각해왔던 것이지만 크나큰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가면을 쓰고 있다. 이 가면을 벗는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온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매일이 불안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몽유병이 생길 것 같은 이유도 이런 것의 연장선이겠지-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