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술을 강제적으로 줄이고 있다. 그동안 내가 마셔온 술의 양이 너무나도 많고 쉼 없이 마셔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절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긴 했다. 내 기억으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2-3년 정도부터 술을 끊임없이 마셨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는 무슨 힘듦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술도 아침까지 먹고 밤새 컴퓨터로 영상을 틀어두고 아빠가 그때 당시 사주셨던 게이밍 의자보다 훨씬 더 편하고 180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침대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뒤로 꺾이는 의자였는데 거기서 매번 자곤 했다. 물론 바닥에 이불과 베개는 다 있었지만 의자에서 내려오는 것이 그때는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술도 많이 마시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마시고 술병은 나날이 늘어만 갔고 처리하지 못한 소주병들이 내 방을 가득 채웠던 적도 있었다. 바닥에서 자다가 발을 잘못 디디는 순간 그 소주병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깡깡 내 방 가득 채워졌기 때문에 잠을 청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가 바닥보다 의자에서 자는 것이 더 편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정말 미친 사람처럼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해댄 덕분에 살은 살대로 찌고 얼굴에 여드름은 쉴 새 없이 나타났고 뭔가 몸의 체질까지 변한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뭘 먹고 무슨 짓을 해도 살이 60kg대를 벗어나는 법이 없었는데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부터 살이 한도 없이 계속 불어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그때만 하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20대 중후반을 살아왔어도 피부에 큰 트러블이 나지도 않았고 일을 하면서 마주친 사람들이 피부에 뭘 발랐냐고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매번 물어볼 때도 있었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끊어내는 것이 문제였다. 스위치를 딸깍하면 껐다가 켜지는 전원처럼 술을 끊고 조절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다. 그때는 내가 중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힘든 일이 있고 취업도 안되고 아르바이트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힘들고 가족들도 이해를 해주고 있기를 바라고 실제로 나에게 이렇다 할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한 가지 일도 꾸준히 못하면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냐- 어떻게 먹고살려고 하냐-라고 끊임없는 잔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 일이지 어디를 가더라도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근하지 않거나 출근시간이 한참 넘었음에도 씻고 면도를 하고 며칠 동안 카페-pc방-편의점 코스로 하루 반나절을 보내고 집에 들어오는 걸 정확히 이틀동안 했는데 엄마는 느꼈나 보다. 얘가 회사에서 잘렸는데 가족들 눈치를 보고 억지로 나가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거구나-라고.
그런 상황들 속에 놓이다 보니 술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집안에서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같이 살던 누나는 알아서 앞가림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엄마도 그때 엄마에게 주어진 가정주부라는 역할을 완벽히 해내고 있었고 아빠는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아주 열심히 사셨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 그러니까 이 집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뿐이었기 때문에 33평 그 큰 집에서 받는 눈치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방문을 항상 굳게 닫아놓고 음악을 틀어두고 무드등을 켜놓고 니코틴이 없는 전자담배를 방에서 피면서 담배가 아닌 가습기를 피는 것처럼 그 구름 같은 연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표현해 보자면 그건 나에게 있어서 '쾌락'이었다.
니코틴이 없는 담배가 어딨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더 구하기 쉬워졌을 거다. 그때는 한참 연초가 지고 전자담배가 자리를 잡아가는 시점이어서 인터넷 스토어에서는 그런 걸 파는 사람들이 얼마 없었을 시기가 있었다. 100% 만들어진 액상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향과 니코틴 등을 첨가해서 집에서 제조를 하고 숙성을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니코틴을 얼마나 넣을 것인가, 넣지 않을 것인가의 선택지도 있었다. 그렇게 돈도 없으면서 액상을 주문하고 들어가는 코일도 같이 주문을 하고 한동안 그렇게 쾌락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니코틴이 있는 전자담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오해를 사곤 했다. 그러다 아빠한테 걸려서 정말 먼지 나게 맞을 뻔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최소 5년 이상을 술을 끊임없이 마셔댔고 올해 들어서 술을 강제로라도 끊고 싶다, 내 손으로는 절대 끊지 못하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시흥에 있는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고 약을 처방받아먹기도 했는데 그 약을 먹는다고 극단적으로 술 생각이 나지 않거나 하지 않았다. 물론 초진이라 약을 조절해야 했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의 약을 썼을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술을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거리가 2시간 가까이 걸렸고 돈을 벌지 않고 있는데 실비 청구까지 되지 않는 항목이라 더 이상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무알콜 맥주를 먹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물론 500ml 무알콜 맥주 한 캔은 150칼로리 정도 되는데 이걸 어느 정도 포만감이 들 때까지 마신다고 치면 하루에 서너 개씩은 먹어야 '아 맥주를 배불리 먹었구나' 생각이 든다. 지금 마트에서 2+1 행사를 하는 중인데 한 캔에 1,950원이라고 치면 세 캔에 4,000원에서 100원 뺀 3,900원이다. 근데 한 번 마실 때 세 캔만 두고 먹으면 또 사러 나갈 일이 있으니 여섯 캔을 사면 8,000원 정도가 된다.
소주 1.8L짜리가 4,700원 정도 하니까 가성비로 따지자면 소주를 따라갈 수 없지만 술을 끊고 조절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괜찮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칼로리가 한 캔에 그렇게 높은데 서너 캔을 마시면 칼로리도 어마어마하다. 목표가 술을 끊는 것이라면 그렇게 돈과 칼로리를 소비해서라도 끊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지만 매일 그렇게 여섯 캔씩 산다고 하면 하루에 8,000원씩 지출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 되니 다른 방식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마시고 싶고 술 생각이 나거나 누군가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참지 못하고 술을 마셔야 하는 그런 수준은 아니다. 물론 대낮부터 가게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그 자유로움이 너무 부럽기는 하지만 나도 막 당장 달려가서 마시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저 낮이 지나고 저녁이 깊어지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서 마시게 되는데 그 찰나의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마시지 않고 버티는 것 같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무알콜 맥주로 버티면서 술을 끊고 있는 것인데 돈도 돈이고 살찔까 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오래된 무거운 우울증을 치료할 때 쓰는 약에도 스테로이드가 들어가서 살이 찐다고 하는데 그거랑 별 반 다르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원장 선생님도 나에게 그랬다. 술을 조절하면서 마실 수 있다면 그건 병이 아니다-라고. 알코올 중독은 질병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신 것이 얼마나 순간적으로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당분간은 무알콜 맥주로 조금씩 버텨보다가 정말 먹고 싶은 날이 있으면 한 번씩 마시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 말도 웃긴다. 그냥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좋은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위로를 해주면서 마시는 술 정도가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글을 쓰고 오늘 당장 다시 술을 마실 수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조금이나마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기록해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