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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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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변화는 간수치의 다이나믹한 변화일 것이다. 피검사 결과지를 전부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술독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살았을 때 그러니까 뒤가 없는 사람처럼 살았을 때의 간수치는 150 이상이었다. 보통 정상범위의 숫자는 2-30 이하인데 내가 몇 배는 높게 나왔으니 정말 미친 사람처럼 술을 마셔댔다. 눈을 뜨면 술을 찾고 눈을 감기 전까지 술을 마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대낮부터 마시는 술이었다. 혼자 살았을 때 오후 2-3시 정도에 일어나서 전날의 숙취가 없다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에어컨을 틀고 컴퓨터로는 음악을 틀고 같이 볼만한 영상을 여러개 띄워두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술을 준비하고 매우 거침없이, 당연하게 술을 세팅해두고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잔을 채워 마시곤 했다. 혼자 사니 먹을 것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해서 대충 라면을 끓이거나 소주잔 옆에 1L 짜리 물통을 옆에 두고 깡소주를 마시다가 배가 고파지면 일본에서 사온 과자들을 대충 꺼내놓고 컴퓨터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소주를 마시고 물을 마시고 대충 쓴 맛을 날리고자 초콜릿을 먹거나 과자를 먹거나 한다. 그렇게 마시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건 일쑤였다.


그냥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날은 마시지 않던 날들 중 하루 날을 잡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마시는 술에 얹어 낮에 추가로 더 마시는거라 정말 무지했고 무식했다. 그냥 낮에 마시는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것 뿐이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했다.


1년 반 정도 되는 시간동안 정말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일이 있을 때는 빨리 마시고 조금이라도 자고 다음 날 일어나서 일을 나갔고 일이 없는 날에는 하루종일 마셔댔다. 그리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정신이 끊길 정도로 붓고 마셔서 약에 취해 살아가는 느낌으로 살았었다. 타지에서 혼자 살아가다보니 의지할 사람도 없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건너건너 알게된 둘째 엄마라고 부르고 가깝게 지냈던 분이 유일했다. 술을 한번씩 사주시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시기도 하고 정말 엄마의 역할을 해주시는 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올해부터 본가로 들어오게 된 것이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본가로 들어온 이후부터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 모아둔 돈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심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아졌다. 월세와 관리비, 생활비만 고려하더라도 마음이 가벼워졌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은 장단점이 있지만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들이 이어지니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을 다닐 수 있게 된 것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7개월이나 지난 지금 내 손으로 술을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물론 술의 유혹에 혹 하는 순간들이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 있지만 무지막지하게 먹던 소주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았고 그것의 효능은 생각보다 괜찮기 때문에 내 손으로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술을 마시지 않고 대체할 수 있는 것을 먹으면 가장 큰 단점은 살이 찐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도 일반 소주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 대체제는 무알콜 맥주인데 0.0의 카스 무알콜은 알코올 도수도 어느정도 있고 칼로리가 꽤 높은 편이라 그걸 먹는 건 그냥 맥주를 먹는게 나을 정도이고 하이트 제로 0.00 이 제품은 칼로리도 18.8 칼로리로 매우 낮기 때문에 소주의 대체제로 훌륭한 것 같다.


물론 이걸 먹으면서도 허전함까지 채울 수는 없기 때문에 과자를 입에 달고 살거나 주전부리를 먹어야만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소주를 먹고 간이 맛탱이가 가는 걸 보는 것보다야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까지 술을 먹지 않았던 적이 처음이다. 혼자 살았던 기간은 버틸 힘이 없었기 때문에 술에 의지하고 의존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의존하거나 의지하지 않을 수 있어서 자유롭기도 하다. 그 덕분에 오후 늦게 일어나거나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일어나는 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된 것 같다.


다행이다. 여러모로. 정말 다행스러운 궤도로 다시 들어오게 된 것 같아서 다행이고 기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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