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사진
한참이 지난 지금 다시 사진을 보니,
내가 체코 시내의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꽤 많이 찍어두었었구나.
사실 체코는 빨간 지붕이 포인트지만
이렇게 한겨울에 눈 덮인 시내의 모습도 예쁜 것 같다.
당시엔 눈 덮인 길 위에서 캐리어를 끌고 에어비앤비 숙소까지 찾아가느라 조금 고생을 했지만 말이다.
숙소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우선 근처에 아주 맛있는 베트남 음식점이 있어서 두어 번 찾아갔다.
우리의 에어비앤비는 셰어하우스의 개념으로, 집이 아닌 룸을 빌리는 것이었고 집주인이 아주 젊었다.
우중충한 체코에서 마주친 사람들 중 가장 흥이 많아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우리 방은 꽤 넓고 따뜻했으며 침대의 사이즈도 컸다.
그러나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식기가 지저분했고 개미도 여러 마리 보였다.
그밖에 욕실은 꽤 크고 깔끔한 편이었다.
조명이 달려있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으나 불이 켜지지 않았다.
옆방에는 어린 남학생 무리가 머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와있었다.
그들과는 처음 마주쳤을 때 했던 인사 외에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시끄러웠고 간혹 문이 열려있을 때 보니 방을 아주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것 같았다.
담배도 꽤 많이 피우는 것 같았고 종종 소리를 지르며 친구와 통화를 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왔기 때문에 딱히 그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돌아와서도 문을 닫고 생활했고 잠을 잘 때는 항상 열쇠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잤다.
우리보다 그들이 먼저 떠났는데 방을 아주 지저분한 상태로 해두고 나갔다.
청소를 하러 들렀던 집주인은 그 몰골을 보고 황당해했다. 방을 치우면서 몇 마디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와 눈이 마주쳤을 땐 쿨하고도 다소 신경질적인 웃음과 함께 "어린 사내애들이란!"과 같은 말을 했다.
저녁까지도 방이 비어있기에 그날은 J와 나, 두 사람만 그 집을 쓰는 줄 알고 기뻐했다.
그러나 늦은 밤 아기를 안고 젊은 부부가 나타났다.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부부와도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는데 급하게 방을 예약해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들은 물론 깔끔하게 치워진 방을 보며 안심했겠지만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 방은 '어린 사내애들'이 며칠간 줄담배를 피우고 나갔기에 갓난아기에게 해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건 지나친 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말을 아꼈다.
옆방의 손님이 바뀌자 J와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근처 마트에서 미리 사온 와인을 마시면서 조금 크게 웃었는데 방음이 잘 되지 않았는지 곧바로
집주인에게 목소리를 낮춰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아마도 부부 중 한 사람이 집주인에게 연락을 한 것 같았다.
키가 작은 우리를 보고 어린애들이라 생각했던 걸까? 집주인은 메시지를 보낼 때 'girls'같은 단어를 썼다.
부부 중 여자는 우는 아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건지 우리가 편했던 건지는 몰라도
들어올 때 입고 온 하의를 벗고 티셔츠와 까만 스타킹만 신은 채 집안을 돌아다녔다.
속옷의 색깔이 훤히 비치는 데도 불구하고 그 상태로 아기도 돌보고 젖병도 씻는 등 여러 가지를 했다.
그러나 집주인의 메시지대로 우리가 조용히 한다한들 소용이 없어 보였다. 아기는 밤새 쉴 새 없이 울어댔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옆방은 다시 비워져 있었다.
그 속의 나
블루
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