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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몌딘 Jun 12. 2016






  호롱에 붙은 불이 옅게 흔들렸다. 그것을 담고 있던 눈동자도 매한가지로 미미하게 흔들린다. 어둠에 침식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인영을 숨기고자 몸을 옹그렸으나 아질한 빛이 단번에 사로잡아 감출 수 없다. 발끝을 오므리고 좀 더 몸을 움츠린다. 하염없이 부끄러운 까닭이다. 미미한 빛이 다시 찬찬히 몸을 잠식한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 숨을 곳이 없다. 울음 젖은 공기가 벅차 두어 번 기침을 뱉어냈다. 아가미가 없는 물고기는 무의미한 버둥질을 해대며 어지러이 유영하다 곧 침잠하고 잠몰하여 종내 익사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숨을 참는다. 물속에서 달아나고자 눈을 감았다.





  세계는 수동적이다. 적어도 이곳에서 나는 수동적이다.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은 필시 불가피한 까닭이고 이 볼품없는 종이 한 자락에 한 줄기의 글을 흩날리는 것도 불가피한 까닭이다. 불가피한 것들은 내 의지에서 발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타의에서 개화한다. 나는 수동적이다. 이 업보를 벗어나고 싶음에도 퇴영한 발자국을 한 보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까닭은 이것 또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불가피하다. 자의로 일어나는 일이 전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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