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쉼표 9 [,]

비워야 채우지

by 여백


강원도.

많은 사람들이 당일치기 여행으로 자주 찾는 곳 중에 하나이다. 단순히 닭갈비를 먹기 위해 남자친구와 즉흥적으로 춘천에 간 적도 있었고, 목적지를 정해서 오래 머무르거나, 친구와 계획을 짜고 1박 2일,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한 경험도 몇 번 있다.

이렇게 강원도 당일치기 여행은 많이 해보았지만 남자친구가 나에게 제안한 플랜은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당시 1월이었다.

그가 보내 준 블로그에서 보이는 사진 속 장면들은 참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블로거는 주의사항을 확실하게 적어놓았다.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해야 한다고, 그리고 매우 춥다고..


"저 잘 미끄러져서 넘어질게 겁나기도 하고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여기 말고 다른 곳 갈까요?"

"제가 아이젠 사갈게요"

"......"


"강원도 00 동네에서 원데이클래스 체험하는 게 있는데 같이 해보는 거 어때요?"

(음.. 굳이 강원도까지 가서 원데이 클래스를? 그렇지만 원하니까 같이 해보자)

"네 알겠어요."


나름대로 조율을 해서 몇 가지 일정을 짰다.

그는 워낙 계획적이기 때문에 거의 그에게 맡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관여하지 않은 부분은 동선이었다

그가 알아서 동선을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일정을 짰으리라 생각했다.


드디어 만남일,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고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디예요?"

"저 지금 가고 있어요 신호등이요"


그는 부피감 있는 무언가를 손에 든 채로 멀리서 달려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꽃다발이었다.


"아니 여행 가는데 웬 꽃다발이에요?"

"가서 사진 찍으려고요. 예쁘지 않아요?"

"아니 우리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제가 들고 다니면 되죠. 00 씨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다. 오감이 발달된 스타일이라 맛도 잘 느끼고, 소리도 잘 듣고, 냄새도 잘 맡는다.

춘천으로 가기 위해 KTX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역한 냄새가 났다.

흔히 말하는 남자 냄새 혹은 노인 냄새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난 그를 바라볼 수 없었다.

"왜 자꾸 딴 데 봐요~ 여기 좀 봐요"

"속이 좀 안 좋아서요.."


그의 얼굴에 기름기가 가득해 보였다.

"기름종이 있는데 쓸래요?"

"아뇨 괜찮아요"

"핸드크림 바를래요?"

"아뇨 괜찮아요 안 발라도 돼요"


대놓고 말을 할 수 없어 에둘러 냄새를 잡길 권하는데도 그는 다 거부했다..

"에이 그래도 손 트니까 핸드크림 발라요"

"그럼 조금만 주세요"


드디어 KTX가 왔다.

그는 갑자기 나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넸다.




쉼표,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