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우지
친구를 만나고 적잖이 실망했던 나는 남자친구에 대한 마음이 점점 식어갔다.
그날 저녁, 우리는 약속대로 낯선 동네로 향했다.
남자친구가 사두고 세를 받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을 보기 위해서였다.
나만 괜찮으면 우리가 들어가 살고 나의 지역이동이나 본인의 이직은 그다음에 생각하자고 했다.
바깥에서 본 그 빌라는 정말 낡았었다.
재개발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가장 큰 문제는 남자친구의 교회와 너무 가깝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세 시간씩 세 번 드리는 그 교회를 난 가고 싶지 않았다.
"근데 집이 교회랑 이렇게 가까운데, 이 교회 안 나가면 어머니가 가만히 계실까?"
"인연 끊을 생각 해야지 뭐"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입에서 인연을 끊어야 한다는 말이 정도로 그 어머니는 교회에 대한 집착이 심한 것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남자친구의 말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누나랑 여동생한테 "매일 2시간씩 기도하고 있니?"라고 얘기하니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어머니와 왕래가 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매번 서울에 올라오는 것은 나를 보기 위함도 크겠지만, 본가에 와서 부모님을 뵙고 교회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 정말 큰 이유였다.
그런데, 누나와 동생과 왕래가 잘 없다 보니 본인까지 어머니를 외면하기에는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떤 시어머니 일지, 나에게 어떻게 대할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그려지며 암울한 미래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그가 다음 주 토요일은 일 때문에 서울로 올라올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예전 같으면 내가 원주로 내려갔을 텐데, 우린 한 주 쉬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통화 한번 없이 오로지 카톡만 하며
건조하게, 사랑 없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