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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27 [,]

비워야 채우지

by 여백


사랑이라는 모래성은 단숨에 무너지는 법이 없다.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 그리고 이별을 기다리는 사람,

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이 서리고,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줄 위로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번져간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침묵과 감정이 어느 순간 무게를 이기지 못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그와 매일 연락은 하고 있었다.

통화기록과 카톡을 보니 대화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반대로 긴장감과 불안이 매일 쌓여갔다.

이 불편한 감정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가 왔지만 나는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했었네?"

나는 실수로 카톡을 읽어버렸다.


"엥 톡을 읽었네?"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으니 저런 식의 답변이 왔다.

이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정말 답답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결국 내 성격대로 질러버렸다.

"우리 지금 이렇게 지내는 게 맞아?"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내는 게 맞냐고"

정면승부를 했다.

나는 결판을 내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생각보다 심플하게 왔다.


"그럼 여기서 끝내?"


예상치 못한 답변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고 싶어서 지금 이러는 거 아냐?"


그는 말했다.

"그래 그럼 끝내자"




'와, 시간 다 버렸네?'

헛웃음이 나왔다.

5개월간 쌓은 모래성은 생각보다 단숨에 무너졌다.

공들인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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