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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Pattern May 07. 2021

편의점

[잡상념]

삑- 삑-

무심한 바코드 소리가 들리면 정적이 이어진 채 

카드를 주고받는다. 

바이러스 탓에 계산대에 생긴 아크릴 판은 

그 두께만큼이나 마주하는 얼굴을 더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난 어릴 적 오래된 아파트 1층에 살았다. 

창문 밖으로는 놀이터가 훤히 보였지만 

부모님께서 혼자 가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기에, 

책가방을 메고 초등학교에 가는 언니 오빠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심심함을 달랬다. 

그런 내가 가장 좋아하던 건 

다섯 살 아이의 다섯 걸음이면 충분히 닿을 거리에 있는 동네 슈퍼였다. 

그곳엔 온갖 신기한 것들이 넘쳐났다. 

발 받침대를 딛고 올라가 냉동고에 낀 성에 사이로 보던 아이스크림, 

특별한 분류 없이 쌓여있는 것의 가장 안쪽까지 손을 넣어 고르던 봉지과자……. 

마치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 들어 엄마에게 심부름을 시켜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장난감을 정리하고 용돈 500원을 받을 때면, 

저금통을 외면하고 작은 손에 꼭 쥔 채 바로 슈퍼로 뛰어갔다. 

다행히도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거의 매일 

제 집처럼 슈퍼를 드나들던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하굣길에 슈퍼를 들리는 것이 나의 일과였으며, 

여름에는 종종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얻어먹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 난 새 동네로 이사를 갔고, 

높아진 층수에 밖을 내다보니 

흐릿했지만 가까이에 보물창고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달려간 곳엔 슈퍼 대신 편의점이 자리했다. 

그곳은 더 이상 보물창고가 아니었다. 

보물 찾기가 필요 없을 만큼 가지런히 정리된 진열대, 

흥정 따위는 없다는 듯 아크릴 판에 끼워진 가격표는 

왜인지 나를 서운하게 했다. 

심지어 500원으로는 초콜릿 하나도 살 수 없다니.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계산대 아래의 상품들을 만지작거렸다. 

"그것도 같이 계산하시겠어요?"

약간 날이 선 직원의 말이 들려왔다.

그 안에는 재촉과 귀찮음이 섞여있었다. 

그 이후로 편의점이라는 곳에서는 더 이상 공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쉬운 마음은 여전하지만 나는 오늘도 칫솔을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이곳에 칫솔도 판다니.’ 

분명 편리한 것이 틀림없다.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편의점에 들어가, 

너무나도 쉽게 필요한 물건을 찾고, 

직원과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 계산을 하는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순간 궁금해졌다.

나는 과연 무엇이 편하다고 여기는 걸까?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 

혹은 다른 사람과 대화도, 눈 맞춤도 없는 것? 

물건을 사는 일련의 과정이 편리해진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의 접촉과 소통이 없는 것까지 

편리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삑- 삑-

바코드 소리 사이로 아크릴 판을 넘어 괜히 눈을 마주쳐본다. 

어릴 적 슈퍼 아주머니의 미소를 다시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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