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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명소

칸사이(関西) ¹교토

by 이듭새


타카야마 역의 아날로그.


아침 일찍 타카야마역에 도착해서부터 이미 긴장이었다. 오늘은 츄부지방을 떠나는 날이자, 가득한 인파를 뚫고 7분 만에 환승구간을 내달려야 하는 결전의 날.


기차에서 내려 역을 나가는 개찰구에서 유일하게 역무원이 티켓을 검사하던 타카야마는, 기차를 타러 갈 때에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몇 번 플랫폼에 몇 시 출발하는 기차가 들어오는지에 대한 안내판을 개찰구 앞에 두고 역무원이 티켓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곳이야.






히다호가 서자마자 뛰어내릴 준비 중.


오늘의 열차 탑승 일정은 이러하다. 타카야마에서 히다호를 타고 세 시간 정도 달려 나고야에 도착하는 시각이 오전 9시 12분. 나고야에서 교토로 가는 히카리의 출발 시각이 9시 19분. 고로 환승이 필요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7분. 심지어 히다호는 특급열차이고 히카리는 신칸센이라 두 열차의 탑승 플랫폼 자체가 멀리 떨어져 있다. 그게 문제다. 바로 건너 플랫폼이어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에 시간이 촉박할 텐데, 여긴 아예 특급열차 개찰구를 나와서 신칸센 개찰구까지 수십 미터 이상의 거리가 있다. 나고야역 안을 냅다 달려야 하는 상황.


1초라도 아끼기 위해 열차가 서기도 전에 짐을 챙겨 들고 문 앞에서 대기했다. 벌써 떨린다. 너무너무 긴장된다. 타야 돼. 무조건 타야 한다. 준비하시고, 뛰세요. Go!






질주 후에 탑승한 히카리 633호.


짝꿍과 나는 정말 미친 사람들처럼 인파를 뚫고 달렸다. 신칸센 출발 1분 전. 아직 계단을 못 오른 상태라 이대로는 안 되겠다 포기할까 못해못해 상태였거늘. 어라, 아직 신칸센이 플랫폼에 문을 연 채로 대기 중이다? 희망이 있다. 내렸던 캐리어를 도로 번쩍 들고 계단을 뛰기 시작. 그리고 일단 뒤도 안 보고 열린 문 속으로 힘차게 입장. 팡파레라도 울려야 한다. 7분 만에 성공하고 말았다. 역시 여행이든 인생이든 같다니까. 포기 안 하고 뛰다 보면 된다. 뭐라도 되는 날이 오는 거다.


무사히 착석 후 긴장이 다 풀려서 기진맥진하면서도 웃음이 실실 났다. 와 이걸 해내네.






사람이 어마어마했던 교토역(京都駅).


원래 칸사이지방은 건너뛰려고 했었다. 워낙 사람이 많은 곳이라 도저히 갈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인데. 그래도 혹시 교토의 단풍을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해서 교토를 하루, 사슴을 보기 위해 나라를 하루. 그렇게 호기롭게 짠 일정은, 교토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후회로 돌아왔다.


교토역에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사람이 많았다. 관광객과 현지인이 고루 섞인 인파 속을 빠져나오는 데에도 한참.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데도 사람이 가득. 역 주변에 차도 바글바글. 그래도 어쩌겠어. 왔으니 즐겨야지. 일단 역을 빠져나간다. 숙소로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교토 너무 따뜻해서 단풍은 말도 안 되겠구나.





걷기 좋던 돌담길.


최대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걸었다. 역에는 당연히 사람이 많을 테니, 모든 일정을 내려놓은 우리는 남는 것이 시간밖에 없기에 걸었다. 번화한 곳에는 발을 들이지 않아 그런지 이제 좀 살 것 같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거닐었던 돌담길이 좋았다. 날씨도 좋고, 바글바글한 인파 속에서 벗어났더니 기운도 좀 차려지는 것 같고.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도 이 지역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듯이 길목이나 건물을 구경하며 걸었다.






멘야유코우 마와라마치점(麺屋優光 河原町).
스탠다드라멘, 교토블랙/쇼유 (スタンダードらーめん, 京都BLACK/貝), 아부리레아챠슈동세트(炙りレアチャーシュー丼セット)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누군가의 추천으로 찾아갔던 곳이다. 멘야유코우(麺屋優光)는 보통 라멘집과 다르게 육수 베이스가 조개라고 한다. 안 가볼 수가 없는 곳이라 열심히 걷고 걸어 찾아갔다. 작은 가게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서있었다.


이렇게 기다려서 들어온 만큼 맛있어야 할 거야! 장난삼아 했던 생각마저도 만족시키는 맛있음이었다. 라멘을 그리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토에서의 첫 끼를 만족스럽게 성공했다.






타카세가와(高瀬川).


밥을 먹으면 꼭 여기저기를 걷게 되는데, 그렇게 발 닿는 곳으로 걷다 보니 사람이 많지 않은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그 주택가 옆에 길게 흐르는 타카세가와(高瀬川). 타카세가와는 교토 시내의 동쪽을 흐르는 유명한 강인 카모가와(鴨川)의 바로 서쪽을 병행하는 모양으로 흐르는 남북의 강이라고 한다. 1600년대에 상인에 의해 교토와 후시미를 잇도록 만들어진 운하이며, 현재는 카모가와에서 분단되어 상류는 타카세가와, 하류는 히가시타카세가와(東高瀬川) 혹은 신타카세가와(新高瀬川)라고 불린단다. 봄이 되면 벚꽃의 명소로 사람이 무척 붐비는 곳이라고.





타카세가와 옆으로 즐비한 주택들.


타카세가와를 따라 깔끔한 주택들이 즐비해있다. 조용하고 사람도 차도 많지 않아서 인도를 따라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았지만, 주택을 한 블록 더 지나치면 더 좋은 산책로가 있다.






카모가와(鴨川).


바로 여기. 이곳이 교토 시내의 동쪽을 흐른다는 유명한 카모가와. 1년에 한 번, 여름 기간(5월 초~9월 말)에는 이 카모가와를 따라 가게들이 늘어선다고 한다.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 잔 즐기는 문화일까.


11월 카모가와의 낮은, 사람도 없고 잔잔하고 조용했다. 집 근처에 이렇게 경치 좋은 곳이 있다면 매일 나와서 산책하고 싶겠지. 널찍하고 확 트인 강가를 거닐던 바람 좋고 해 좋던 날. 내 안의 교토 이미지는 카모가와가 되었다.






다리 위에서 본 교토역으로 이어지는 철로.


일본은 유독 길이나 다리 위에서 철로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일본에 살던 당시에 지내던 쪽에 그런 곳이 많아서, 그때도 걷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철로 따라 난 길을 걷기도 하고 그러다 만나는 육교 위에서 멍하니 전철이 지나다니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전철을 보는 것이 쉼이었던 때. 이번에도 또 추억 방울 하나를 찾아냈다.






nana’s green tea.


1999년경 일본에는 아직 말차나 일본차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가 없었다고 한다. 주류가 커피 체인점이었던 시기. 그래도 온천 주변에서는 남녀노소 말차 가게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을 보고 말차 카페를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2006년 요코하마에 1호점을 오픈한 나나즈그린티(nana’s green tea).







맛챠시라타마파르페(抹茶白玉パフェ), 맛챠롤케이크(抹茶ロールケーキ).


시즈오카에서도 가봐야지 하다가 못 갔는데 이렇게 교토에서 방문했다. 시즈오카도 교토도 본점이 아닌 큰 체인점이긴 하지만. 파르페와 롤케이크도 맛있었고, 함께 주문한 호지챠(焙じ茶)가 맛있었던 기억.






조용한 주택가.


일본에 촉박한 일정으로 가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내가 워낙 번화가보다 골목 주택가를 걷는 것을 좋아해서다. 느릿느릿 그곳의 분위기나 일상 속에 같이 흐르는 듯한 기분을 좋아해서. 이 동네에는 이런 집들이 있구나, 골목 안쪽에는 이런 가게가 있구나. 사람들이 사는 동네의 일부를 좋아한다. 짤막하고 촉박한 일정으로는 진득하게 느낄 수 없는 것들이지.






야키니쿠하야시 토우지점(焼肉はやし 東寺店).
호르몬(ホルモン), 특제꼬리수프(特製テールスープ).


그런 주택가 안에 있는 야키니쿠하야시 토우지점(焼肉はやし 東寺店). 예약 없이는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해서 일부러 이른 시간에 갔는데도 이미 사람이 많았다. 한 시간 반 뒤에 예약이 있는 테이블이 있는데 거기도 괜찮냐 묻기에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50분 안에도 게눈 감추듯이 먹을 수 있다. 아자.


호르몬 구이가 신기하게 생겨서 불판에 올리기도 전에 두근두근.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꼬리곰탕도 맛있었고. 다들 신나게 맥주를 마시고 있던데 역시 그럴만한가 보다. 짝꿍도 내 앞에서 맥주를 술술 마시고 있는 것을 보니. 급하지 않게 먹었는데도 제한이 있던 시간 따위 의미가 없게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기왕 교토에 가는 거 그래도 이곳저곳 둘러보자던 계획은 전부 스러졌지만, 번화가에서 떨어진 숙소 덕에 많이 걸을 수 있었다.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출근, 퇴근, 등교, 하교를 봤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니 더더욱.


유명한 관광지에 가보는 것도 좋지만, 나도 모르게 발이 닿았던 곳이 그런 명소일 수도 있다.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곳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추억이 나만의 명소가 될 수도 있다. 짧은 교토가 내게 준 감사한 쉼표를 간직하며 또 한 발 딛는다. 더 넓어진 생각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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