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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쁨 속에는 삶이 녹아있다

츄부(中部) ⁴나고야

by 이듭새


나고야(名古屋)에 도착한 히카리 511호.


도쿄에서 시즈오카에 갈 때 탔던 히카리를 이번에도 탔다. 좌석이 넓어서 쾌적하고 좋은데 우리가 이동하는 구간이 짧다 보니 한 시간 정도만 타는 게 내심 섭섭한 신칸센 히카리. 50분 정도 탔는데 나고야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전광판에 떴다. 나고야, 안녕?






9h nine hours Nagoya station.


이 커다란 여행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동선을 짜는 것이었고, 그다음이 숙소를 예약하는 일이었다. 한 달 이상의 숙소를, 그것도 전국 곳곳 모두 다른 지역에. 이동하는 날짜에 맞춰 매일 묵을 숙소를 찾아 예약하는 것이 여간 골머리 썩는 일이 아니었다. 짐이 많기도 하고, 둘이서 함께 이동을 하니 웬만해서는 낡더라도 저렴한 호텔을 찾아 예약했지만, 나고야에서는 적당한 숙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너무 역에서 떨어져 있거나 너무 비싸거나. 결국 많은 고민 끝에 예약했던 처음이자 마지막인 캡슐 호텔, 나인 아워즈 나고야 지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여성 전용 층에서 표기되는 층 안내.


1층은 리셉션 겸 카페. 2층에는 남성 전용 샤워룸과 락커룸, 3층에는 여성 전용 샤워룸과 락커룸. 4층부터 6층까지는 여성 전용 룸, 7층부터 9층까지는 남성 전용 룸. 10층은 라운지. 이렇게 총 10층으로 구성된 단독 건물이라 역에서 찾아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여성과 남성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층으로 분리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애초에 엘리베이터부터 따로 탑승하도록 되어있다. 해당 층의 카드키가 아니면 엘리베이터 자체를 탑승할 수 없는 구조.


쾌적하고 답답하지 않고 깨끗했다. 무엇보다 몸 하나 들어가는 캡슐룸이 의외로 아늑해서인지 푹 잘 자고 일어났다.






후르츠다이후쿠 벤자이텐(ルーツ大福 弁才天).
카키다이후쿠(柿大福).


다이후쿠(大福)라고 하면 보통 팥이 들어간 찹쌀떡으로 화과자의 한 종류다. 다이후쿠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겠지만 그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꽤 유명한 건 딸기가 들어간 다이후쿠가 아닐까. 숙소 근처에 벤자이텐(弁才天)이라는 후르츠다이후쿠(ルーツ大福)로 유명한 가게가 하나 있었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후르츠 다이후쿠인데. 기간 한정으로 감이 들어간 다이후쿠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나도 짝꿍도 홀린 듯 들어가고 말았다.


감이 들어간 카키다이후쿠(柿大福). 카키후쿠 한 알을 구매하며 만난 맛있는 행운. 직원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날짜가 오늘까지인 카키다이후쿠가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하나를 더 같이 넣어드려도 괜찮을까요? 하고 물었다. 와아, 이런 일이 다 있구나. 처음 구매해 본 다이후쿠가 정말 내게 후쿠(福, 복)를 주는 기분이지. 한 알씩 들고 사이좋게 나눠먹은 카키다이후쿠는 맛있었고, 말랑한 기억을 하나 또 적립했다.






세상 복잡하고 큰 나고야역.


나고야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정말 복잡하다.’였다. 사람이 너무 많고 그 많은 사람들 중 느긋한 사람이 없었다. 바쁘고 정신없고. 다시 나고야역으로 왔을 때엔 그 감상에 다른 감상이 하나 더 추가됐다. ‘와, 정말 넓구나.’


도쿄역을 방불케 하는 넓이. 현지인, 관광객, 외국인이 한데 섞인 복잡함.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급하고,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급했다. 일본을 돌아다니면서 유일하게, 운전하는 차들을 보고 미친 거 아니냔 소리가 나온 지역이었다. 운전을 험하게 하는 일본이라니. 후에 이 감상을 일본인 친구에게 말했더니, 나고야라면 그럴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소카츠 전문점인 야바톤(矢場とん).
고쿠죠우리브텟판톤카츠(極上リブ鉄板とんかつ)


나고야의 명물이라면 여럿 있겠지만 그중 미소카츠를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서 간 야바톤(矢場とん). 사실 카루이자와에서 먹었던 소스카츠가 너무 맛있어서 그걸 생각하고 찾았던 곳이었는데, 느낌이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지글지글 끓는 철판 위로 직원이 직접 소스를 뿌려준다. 촤아악 하는 소리로 한 번 감상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자욱한 연기로 또 한 번의 감상. 나머지는 맛있게 먹으면 절로 나오는 맛있다는 감상이 따라붙는다.






나고야의 저녁.


낮에는 낮이라 사람이 많고 저녁엔 저녁이라 사람이 많다. 사실 길도 도로도 널찍하고 건물들도 큼직해서 좁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사람이 전부 가득이다. 한적함이나 느긋함과는 거리가 먼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는다. 여기도 걷고 저기도 걷고. 역을 기준으로 아주 크게 빙 둘러서 곳곳을 돌아다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나고야는 신쥬쿠와 가장 흡사하지 않을까. 내가 신쥬쿠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면 비슷한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과 유추.






우나젠(うな善).


스시로 먹어도 맛있고 돈부리로 먹어도 맛있는 장어. 나고야에 왔으니 히츠마부시를 먹어야지. 그 생각으로 가려던 곳은 아츠타호라이켄(あつた蓬莱軒)이었으나, 이동이나 여러 가지 일정이 여의치 않아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나고야에 왔는데 히츠마부시 안 먹고 가면 안 되지 않느냐는 생각으로 찾은 우나젠(うな善). 나고야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가격대가 낮은 것도 아닌데 사람이 가득이었다. 예약도 안 하고 왔는데 하마터면 못 들어갈 뻔했지 뭐람.






나고야식 장어덮밥인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


가난한 여행객인 나에게 있어서 한 끼 먹고 지불하기에는 손 떨리는 가격이지만 먹고 후회가 전혀 없었던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 히츠마부시는 나고야식 장어덮밥이라고 하니 꼭 나고야에서 먹어보고 싶었다. 보통 동그란 밥그릇(이것을 히츠(ひつ)라고 하는 것 같다.)에 나오는 것이 특징. 특이하게 먹는 방법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어서 어느 히츠마부시를 파는 가게에 가도 관련해서 설명이 적힌 안내문 같은 것들이 붙어있곤 한다. 4등분 해서 처음엔 이렇게 먹고 그다음엔 같이 나온 반찬들을 넣어 먹고 그다음엔 어떻게 먹는 등. 방법 다 지켜가면서 먹기에는 맛있어서 입에 계속 넣다 보면 이미 다 사라지고 없다 이거예요.






우나쥬(うな重).


우나쥬(うな重)는 히츠마부시와 달리 다른 부가 재료 없이 밥 위에 장어가 얹어져 나온다. 별다른 방법이 정해져 있지는 않고, 동그란 그릇이 아닌 네모난 찬합에 나오는 것이 특징. 어느 쪽이든 맛있는 건 매한가지다. 살살 녹는 우나기. 가히 명물이라 할만하다.






나고야의 밤.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나고야의 인파. 회사 건물로 추정되는 곳의 불들도 꺼질 생각을 않았다. 여기 혹시 서울인가요? 서울의 야경은 야근으로 완성된다던 말처럼, 나고야의 밤도 혹시 야근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코히샤 오모테산도(珈琲舎 表参道)의 앙금커피맛챠티라미스(あん珈琲と抹茶のティラミス).


사람도 그렇게 많고 열린 술집도 많은데 이상하게 카페가 많지 않았다. 카페보다는 킷사텐을 많이 간다는 아이치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래서 카페가 이렇게 없는 건가. 꽤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마땅히 들어갈 곳을 찾지 못 하고 방황하다가 들어간 코히샤 오모테산도(珈琲舎 表参道). 팥과 커피와 맛챠로 만든 티라미스가 맛있었다.






나인 아워즈 라운지 테라스에서 본 야경.


캡슐호텔은 다 좋은데 자기 전까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면서 같이 맥주라도 한 캔 하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점이다. 아직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기도 해서 10층의 라운지에 올라왔더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크지 않은 라운지 안에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마침 날도 선선하고 좋겠다 야외 테라스로 나와서 조용한 야경을 보며 짝꿍과 못다 한 이야기 나누기. 이렇게 또 새로운 곳에서의 하루도 지나가는구나.






다음날 아침 나고야역 앞의 아침 방송 촬영.


이른 아침 시간에 기차를 타야 해서 부랴부랴 나왔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젯밤 공기가 축축하더라니. 짐을 이고 지고 끌면서 겨우겨우 비에 젖은 채 나고야역에 도착해서 만난 부지런한 광경.


매일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며 호텔에서 틀어두는 아침방송 중에 'ZIP'이라는 방송이 있다. 꽤 긴 시간 동안 여러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는 아침쇼 같은 느낌의 생방송. 캡슐호텔에서 자고 일어난 오늘 아침에는 바로 볼 수 있는 TV가 없었는데, 웬걸. 라이브로 아침 방송을 보는 기분이다. 나마 테레비.


항상 바쁜 생활 속에서 지내느라 한동안 이어지던 느긋한 환경을 만끽하던 근래였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만 같았던 나고야. 한적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가 빨리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그 바쁨이 또 결국 누군가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다. 각자의 할 일을 하며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 속에 내가 잠시 발을 담갔던 하루였다는 것을.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 나고야의 바쁨이 이따금 생각이 나는가 보다. 느긋함 속에서는 여유를 찾을 수 있지만, 바쁨 속에서는 살아감을 볼 수 있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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