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행은 쉼의 날도 중요하다

홋카이도(北海道) ⁴삿포로 2

by 이듭새


삿포로에서 스스키노로 가는 길에.


첫눈에 하얗게 덮인 세상을 본 게 불과 몇 시간 전 아침인데. 오타루에서 삿포로로 넘어오니 놀랄 만큼 다시 가을이었다. 언제 소복했었냐는 듯 청명하고 맑은 하늘과 알록달록한 나무들. 이렇게 다시 홋카이도의 가을이다.






삿포로에서 스스키노로 가는 길에.


커다란 여행에는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를 살펴봐야 할 때가 왔고, 오늘이 바로 그러기 딱 좋은 날이다.


한 달 이상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만큼 소모되는 것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종일 걸어 다니느라 탈탈 털어 쓰는 체력이 그렇고, 모르는 곳에 발을 들이면서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는 정신이 그렇다. 이 체력과 정신을 충전하고 다잡지 않으면 남은 일정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안 봐도 뻔하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한 쉼이라는 것이 꼭 필요하고, 그 쉼의 날은 바로 오늘이다. 홋카이도의 일정을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쉼의 날.






오오도오리 공원(大通公園)의 가을.


새로운 곳은 설렘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설렘을 오롯이 만끽하기 전까지 길목에서 쥐고 있는 몇 개의 물음표와 한 주먹의 불안함. 그것들이 주는 긴장감은 어느 때는 지침이 되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기도 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비상식량처럼 꺼내서 흡수해야 한다.


그 비상식량 섭취를 위해 이 커다란 여행의 계획을 짤 때, 같은 곳에서의 연박이나 다른 곳에 갔다가도 하루 묵었던 곳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중간중간 끼워 넣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처음 발을 디뎠던 곳에서 하룻밤 묵은 것만으로도 그새 숙소까지 돌아가는 길이 익숙하다거나 근처 편의점이나 기차를 타기 위한 역으로 가는 길이 익숙해지곤 하니. 그 편안함이 몸에도 쉼을 주고 정신에도 안정을 준다. 숙소로 가는 길을 새로 찾지 않아도 되는 번거로움이 없다는 가뿐함. 가벼운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식당의 메뉴판을 붙들고 끙끙대며 고민하지 않아도 이미 나는 이 식당에 와본 적 있어 어렵지 않게 주문할 수 있다는 뿌듯함. 사사로운 것에서부터 알게 모르게 충전을 한다.






스스키노의 상점가 중 하나.


오타루에 가기 전에 몇 번 돌아다녔다고 이제는 편하게 휘적휘적 걸어 다니는 스스키노의 상점가. 어디쯤에 어떤 가게 있지 않았어? 짝꿍과 아직 식지 않은 기억들을 주고받으며 요기할 곳으로 향하는 발도 가볍다.





코메다커피점에서.


원래도 이렇다 할 계획이 있는 여행을 하는 편은 아니기에 외려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지켜 이동할 수밖에 없는 기차여행을 계획하면서 머리를 얼마나 쥐어뜯었는지 모른다. 이 기차를 이 시간에 타야 이 시간에는 이 지역에 도착하고 그래야 거기서 어디로 이동을 할 수 있고 식사할 곳은 어디로 가야 하고 거긴 어떻고 저긴 어떻고 기타 등등.


그래서 이렇게 홋카이도의 마지막날에 좋았던 곳을 거닐고 마음에 들었던 곳에 들어가 찬찬히 배를 채우고. 하는 걱정 없이 대화를 나누는 느긋함이 꽤 달았던 기억.






스스키노의 골목 어딘가.


홋카이도를 벗어나야 하는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체크아웃 후 숙소를 나와 마지막이 될 스스키노의 골목을 빠져나간다. 삿포로역을 향해 걸어가는 새벽은 아직 어둡고 사람들이 없었다. 저녁부터 밤이 늦은 시간까지만 반짝 사람이 많은 묘하고 신기한 스스키노. 언젠가 또 거닐러 올게.






이른 새벽 오오도오리공원.


멀리서 삿포로 테레비 타워가 보이는 걸 보니 금세 오오도오리 공원에 도착했나 보다. 사람이 없고 새벽 공기가 차가워서 종종 걷는 발이 빨라지니 삿포로까지 금방이다.


그러고 보니 포털사이트에서 종종 보던 삿포로의 오도리 공원이라는 것이 춤을 춘다는 뜻의 오도루(踊る)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오도리 공원인가 했지 뭐람. 큰길을 뜻하는 오오도오리(大通)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낙엽이 바람에 열심히 날아다니고 회오리도 치고 하길래 아하 그래서 오도리 공원이구나 했다고.






아직 어둑한 삿포로역 앞.


해보고 싶었던 기차여행. 그 첫 시작은 가장 가보고 싶었던 홋카이도였다. 홋카이도에서 처음을 시작할지 홋카이도로 마지막을 장식할지. 몇 날 며칠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는데. 그 고민마저 값지게 만들 만큼 너무나도 좋았던 홋카이도 여행은 설렘과 기대와 만족. 그리고 쉼이 공존했다.


일주일 남짓의 홋카이도. 그 마지막을 하얀 눈으로 열고 말간 가을로 닫는다. 언젠가 또 발이 닿는 날. 그땐 차곡차곡 모아 쥔 지금의 추억을 비상식량 삼아 또 내가 모르던 설렘을 기대하며 이곳을 찾아야지. 안녕, 홋카이도.


keyword
월, 금 연재
이전 05화인생도 여행과 같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