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北海道) ³오타루
홋카이도만 길게 둘러볼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여행도 인생이랑 같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충족시킬 수 없다. 얻을 것을 위해 버릴 줄도 알아야지. 그렇게 추려낸 홋카이도의 짤막한 일정 중 가장 기다리던 곳. 오타루로 간다. 이동수단은 신칸센이 아니라 전철. 따로 지정석 티켓은 필요하지 않으니 짐만 챙겨 들고 얼른 올라탔다.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전철은 해안가를 달린다. 가는 방향 기준으로 오른쪽에 앉으면 바로 바다를 보면서 갈 수 있는데, 쾌속 에어포트는 워낙 낡은 전철이라 그런지 창문이 지저분해서 뿌옇게 보인다는 것이 조금 아쉬운 점.
얻을 것을 위한 또 하나의 버림은 역시 숙소다. 예전부터 오타루에서 느긋하게 좋은 숙소에 묵어보는 것이 나름의 바람이었는데. 하루만 있기 너무 아쉬워 이틀로 일정을 늘리면서 숙소를 과감히 포기했다. 이건 홋카이도 여행이 아니라 아주 커다란 기차 여행이야. 잊지 말 것.
그렇게 느긋하게 오타루에 도착해서 무인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두고 건물을 나왔던 순간이 어찌나 벅차고 기쁘던지. 드디어 내가 오타루에 와보는구나. 그것만으로도 만족감이 반은 채워졌는데, 선선하고 축축한 공기를 벗 삼아 걷는 저녁길에 워낙 고즈넉해서 사람이 많은 관광지에서 이런 느긋함을 느낄 수 있다니. 더욱 만족감이 차올랐더랬다. 저렴한 숙소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덤. 숙소에서 상점가까지, 상점가에서 숙소까지 걸어오는 길목이 참 좋았으니까.
어둑해진 골목골목을 잘도 찾아 들어갔다. 괜찮은 곳을 찾았다며 지도를 보고 앞장서서 걸어가는 짝꿍의 뒤를 쫄쫄 따라가면서, 저를 지금 어디로 데려가시는 건가요? 납치인가요? 하고 장난을 치다 보니 가게라고는 없을 것 같은 곳에 가게가 떡하니 있었다. 호르몬야키 야시마(ホルモン焼 やしま).
들어가도 되나요? 문을 빼꼼 열고는 이제 막 저녁 장사를 시작한 가게에 첫 손님으로 얼굴을 들이민, 누가 봐도 관광객이었을 우리를 보는 얼떨떨한 낯의 노부부와 그의 아들. 가족 세 명이서 운영하는 작은 가게인 듯했다. 한국어 메뉴판도 없고 동네 구석에 있는 곳이라 외국인 손님이 올 거란 생각이 없지 않으셨을까. 들어와도 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우리도 쭈뼛거리고 들어가 어색하게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타루는 삿포로다 조금 더 쌀쌀했다. 내일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있어서 공기가 벌써 차가워진 걸까. 저녁이 되니 부쩍 쌀쌀해졌는데 그 추위를 달래주는 따끈따끈한 물수건이 난로 위 냄비 안에서 데워지고 있었다.
먹고 싶은 호르몬 몇 가지를 주문하고 화로 위에 구워서 먹었다. 내가 먹고 싶어서 주문한 우메보시와, 짝꿍이 먹고 싶다며 주문한 오니기리. 우메보시도 직접 만드신 것 같고, 오니기리는 주문을 하니 할머니께서 바로 만들기 시작하셨다.
축축한 날씨에 화로 위에서 재료들이 구워지는 냄새. 오니기리를 만드는 밥 냄새. 소란스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작은 가게 안. 손님들이 들어올 때마다 드르륵 열리는 미닫이 문. 홋카이도의 겨울을 미리 만난 것만 같은 밤.
해가 다 지기 전의 오타루운하(小樽運河)에는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밤이 되니 사람이 많이 줄어서 조용했다. 푸른 조명 덕인지 훨씬 운치도 있고 예쁘고.
내가 오타루운하의 산책로를 걷고 있다니. 거짓말을 보태면, 이게 꿈인가? 할 정도로 좋고. 거짓말을 덜어내더라도 아낌없이 좋다는 말을 뱉을 수 있다.
쫓기는 것이 없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바쁘지 않은 일상은 쥐려고 하면 외려 쥐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쥘 수 있을 때 이렇게 마음을 다해 쥐어야 한다. 꽉 쥔 채로 충전도 하고 재생도 하고. 내가 가진 이 24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쓸 수 있는 감사함을 귀히 여기려고 한다.
오타루에서의 첫날밤이 아주 만족스럽고 조용하게 흐른다. 사람들의 발이 많이 닿지 않는 골목부터 시작해서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건물도 지나고 어둑한 상가가 즐비한 옆길도 지나고. 숙소를 향한 발걸음이 무겁지 않은 감각은 여행에서 자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오타루에서의 추억은 어디를 들춰서 꺼내도 전부 좋았던 것들이 가득이다.
내일은 비가 내릴 거라더니 어제의 일기예보가 아주 기똥차게 들어맞는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미 한바탕 비가 내린 후였다. 축축한 길을 따라 걸었다. 숙소에서 상점가까지 나가는 길목에는 큰 도로도 있고 골목도 있어서 걷는 게 지루하지가 않다.
몇 달 전부터 전화로 예약을 했던 쿠키젠(群来膳). 스시 오마카세로 유명한 곳. 아마 지금은 더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간판에는 쿠키젠 앞에 握(쥘 악)이라는 한자가 있다. 니기리즈시를 뜻하는 한자일 터.
이렇게까지 점심을 호화롭게 즐겨도 되는 건지 고민을 했었지만, 역시 또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버리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게 있다. 이 여행이 그랬고 이런 내 기준의 호사 또한 그렇다.
이런 호사는 누려도 될 정도로 그간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그 보답 같은 거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딱히 큰 호사도 아닐 테지만) 누가 묻지도 않은 생각들을 괜히 혼자 곱씹으며 눈앞에 뿅 하고 생겨나는 스시 하나를 입에 넣을 때마다 피실 웃음이 샜더랬다.
원래도 좋아하는 음식을 너무 와보고 싶었던 지역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즐기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면 무엇이 행복이겠는가. 이것은 행복이다. 행복이고 즐거움이고 또 고마움이다. 그냥 이렇게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과 시간들이.
전날과는 달리 하루 꽉 채워 오타루에 있을 수 있는 날이니 부지런히 이곳저곳 걸어 다녀야 한다. 그러니 우산 장착 완료. 잠시 그쳤던 비가 결국 우산을 쓰지 않고는 다닐 수 없는 정도로 내리기 시작했다.
투명한 우산을 쓰고 있으면 일본에서 아등바등 살던 때가 생각난다. 비싼 돈을 준 가지각색의 우산을 사는 사람들보다 콤비니에서 300 엔 500 엔이면 살 수 있는 비닐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일터나 우산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는 상점 같은 곳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바뀌고 마는 우산들. 같은 비닐우산이어도 헤짐의 정도는 분명히 있는데도, 아직 얼굴이 반짝하고 몸이 빳빳한 새 우산은 꼭 누가 바꿔서 들고 가곤 하던. 추억의 비닐우산.
사카이마치도오리(小樽堺町通り)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비가 내려서 길거리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그렇겠지. 아무래도 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겠지. 우리도 얼른 들어가야지 생각을 하고 있던 차니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치즈 케이크로 꽤 유명한 르타오(LeTAO). 르타오는 홋카이도의 3대 디저트 브랜드 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 본점이 바로 오타루에 있다. 오타루에만 일곱 개의 지점이 있고 그중 다섯 개의 지점(본점, 파토스, 데니쉬전문, 쇼콜라, 테이크아웃)이 사카이마치도오리에 있다. 그래서 이렇게 친절하게 르타오 지도까지 있더라.
이곳이 바로 르타오 본점(本店)인데 사람이 무척 많았다. 저쪽 문으로 들어갔다가 이쪽 문으로 바로 돌아 나오기.
본점 맞은편에 있는 프로마쥬 데니쉬 데니 르타오(フロマージュデニッシュ デニルタオ)라는 이름 길이만 한 사발인 데니쉬 전문점. 사람이 많이 없고 한적하길래 들어갔었더랬다.
이름처럼 케이크가 아니라 데니쉬 전문점인데. 우유도 치즈도 전부 홋카이도산을 고집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홋카이도산이 맛있으니까 응. 아이스크림도 팔고 애플파이나 치즈 데니쉬 등을 판다.
애플파이를 너무 먹어보고 싶었는데 적당히 자제할 줄 아는 진정한 어른. 이 아니라 그냥 뭐 다른 거 먹고 갔었던 터라 배가 불렀다. 배가 불렀을 때 맛있는 게 진짜 맛있는 거지 뭐.
데니쉬 전문점을 따라 한참 걸어가다 보면 이번엔 초콜릿 전문인 누베루바그르타오 쇼콜라티에(ヌーベルバーグルタオショコラティエ)가 나온다. 역시 배가 불러서 들어가지 못 했던 것이 조금 아쉬운 것이겠고.
쇼콜라티에 맞은편에 있는 르타오 파토스(パトス). 이곳이 사카이마치토오리에서 가장 큰 오타루 매장이다. 파스토 안에 테이크아웃 매장인 르타오프라스(ルタオ プラス)도 있다. 1층에는 프라스와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카페가 있고, 2층은 통유리로 된 오픈 키친이 있는 카페였다. 파스타나 오므라이스 같은 식사를 할 수도 있고 디저트도 먹을 수 있고.
테이크아웃을 할 생각은 없고 간단히 먹고 나가려고 주문하는데도 사람이 많아서 제법 줄을 서서 기다렸다. 자리도 겨우겨우 잡았지. 그리고 르타오가 자랑하는 더블프로마쥬(ダブル フロマージュ)는 기다려서 먹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 맛있다는 뜻이에요. 부드럽고 살살 녹고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아주 시끄러운 중국인 가족만 아니었다면 뭐라도 하나 더 주문해서 먹었을 텐데.
나라불문 인종 불문. 어딜 가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신경을 쓴다. 어느 나라에서든 그 나라의 입장에서 외국인(혹은 관광객)은 내 나라의 얼굴이 되는 거니까. 나로 인해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이 나빠질 수도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 참 많이 겪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그림처럼 예쁜 외관을 자랑했을 듯한 오르골당 본점.
약 25,000 개의 오르골이 있다는 오르골당의 내부는 잔잔하게 깔리는 오르골 소리가 댕그랑댕그랑 참 좋았다. 다양한 기념품들이 있으니 여행객도 관광객도 많다. 곳곳에 돌아가거나 움직이거나 반짝이는 것들이 많아서 눈이 쉼 없이 쫓고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간다. 바깥과는 다른 세상이기라도 하듯 아기자기한 평화로움.
내가 나고 자라고 지낸 나라에서 비행기로 몇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그곳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그 작은 도시 속 어느 거리에서. 그 거리의 어느 건물 안에서. 내가 사는 곳과 다른 곳을 느끼고 알아가는 경험은 값지다. 내 생이 가지고 있는, 어쩌면 한정된 그 시간 안에서 떼어낸 소중한 시간의 조각과 맞바꾸는 경험인데 값지지 않을 수가 없다.
비가 내려서 더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내가 만난 오늘의 날씨가 나만 맛보는 여행의 맛 같아서 좋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해가 쨍쨍하면 해가 쨍쨍해서 좋았을 거다. 어디서 어떤 여행을 하든 날씨보다 큰 건 내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가 아닐까.
원래는 가려고 했던 홋카이도 가정식 가게가 있었는데 하필 휴점일이라 노선을 틀어 소바 가게에 갔다. 찾아가는 동안에는 비가 그쳐서 우산을 쓰지 않고 걸었다. 어디에 있나 생각하며 골목을 걷다가 만난 소바 가게 야부한(籔半)은, 가정집처럼 생긴 외관을 둘러싼 정원이 무척 근사한 가게였다. 비가 내려 더 운치 있는 모습.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의 가게로 들어 서니 이미 대기하고 있는 손님들도 있었고 식사 중인 손님들도 보였다. 그때 알았다. 무척 유명한 곳이구나. 짝꿍의 구글링 능력이 또 이렇게 번쩍이는구나.
점심으로 쿠키젠에서 이쿠라 군함을 먹었을 때 느낀 것이 있다. 여태 내가 먹었던 이쿠라는 이쿠라가 아니었던 거야. 이쿠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쿠라는 비리고 맛없다고 생각했던 거야. 이쿠라는 원래 이렇게나 맛있는 재료였던 거야. 그리고 야부한에서 소바를 먹고 또 느꼈다. 여태 내가 먹었던 소바는 소바가 아니었던 거다. 소바를 먹고,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는 날엔 이 가게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느낀다? 이게 말이 되나. 난 그렇게까지 소바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닌가. 사실 나는 소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을까. 정체성에 혼란이 올 정도로 맛있었다.
찬합처럼 나뉜 저 와리코 소바 3단(割子蕎麦三段)도 맛있었지만(와리코 소바는 4단과 5단도 있다.) 나메코 소바(鳥なめこ蕎麦)의 맛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매끈매끈한 버섯 머리가 입안에서 동글동글 구르는 따뜻한 소바. 오늘도 넓어지고 마는 나의 식(食)견.
맛있는 저녁은, 배는 부르지만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게 한다. 비를 피하기 위해 천막이 있는 상점가를 따라 걷다가 우연히 본 치과 건물의 쇼윈도에는 많은 인형들이 옹기종기. 하나같이 전부 마스크를 끼고 있길래 절로 눈이 갔다. 처음에는 저렇게 작은 사이즈의 마스크를 파나 싶어 가까이 가서 보니 일반 마스크를 크기가 각각인 인형들의 사이즈에 맞도록 잘라 씌워둔 모습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작은 것들에 절로 웃음이 지어질 때가 있다. 사실을 모르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때도 있다. 인형에게 딱 맞는 크기의 마스크를 씌워주면서 귀엽다며 좋아하지 않았을까. 이것 좀 보라며 깔깔거리다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았을까. 이 길을 걷던 또 어떤 누군가도 나처럼 이 모여있는 인형들을 보고 웃지 않았을까. 이 작은 상상들이, 그냥 숙소로 가기 위해 지나는 길목 하나를 즐거운 추억으로 새겨준 것에 웃음이 지어졌다. 즐거웠다. 작은 상상을 만들어준 누군가의 행동이 내게는 큰 추억이 되었다는 말이다.
아쉬움을 안고 오타루를 떠나야 하는 날 아침.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자고 일어나서 커튼을 걷자마자 보이는 하얀 눈. 우와! 첫눈이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눈이라니. 분명 어제까지는 가을이었는데. 홋카이도는 눈 내리는 시기가 빠르니 혹시 눈이 내리는 걸 볼 수 있으려나. 아주 약간의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코다테도 삿포로도 워낙 가을을 가득 담고 있길래 약간의 기대도 조용히 내려둔 지 오래였는데. 오타루를 떠나는 날에 이렇게 첫눈이 내릴 줄이야. 야트막하게 쌓인 눈을 손끝으로 콕콕 건드리니 차가운(당연하다.) 눈이야. 진짜.
짐을 끌고 역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눈이 더 펑펑 내렸다. 오래 서있던 차에는 눈이 쌓이기도 하고, 걷고 있는 짝꿍의 머리에도 눈이 쌓였다. 눈이라니. 오타루를 떠나는 날에 오타루의 첫눈을 만나다니. 내가 가진 오타루의 기억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도장을 꽝꽝.
삿포로에서 오타루에 올 때 타고 왔던 쾌속 에어포트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들어와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뉴스에서도 오타루에 첫눈이 왔다고 발표했다. 2023년 오타루의 첫눈이 내리던 날, 나도 오타루에 있었다. 처음이라는 선물은 언제 어디서 받아도 설레고 벅차다. 이렇게 예상도 못한 멋진 선물이라니.
오래된 역. 낡은 전철. 조용한 아침. 첫눈에 들뜬 마음. 맞지 않는 박자가 없다. 딱딱 아주 멋들어지게 맞는다. 여행 중 제대로 맞지 않는 날이 있으면, 이렇게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맞아떨어질 때도 있는 거다.
인생도 여행과 같다면,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때도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잘 풀려도 되나 싶을 만큼 술술 풀려 힘차게 나아가는 때 또한 있지. 그리고 전자를 무뎌지게 할 만큼 후자의 힘이 클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 힘을 키우기 위해 기쁘고 고마운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좋아하는 일을 만나 벅차거나 들뜬 마음을 드러내는 기쁨을 유난이라 치부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 순간에 느꼈을 감정이나 생각을 가감 없이 내뱉는 활자들에 오글거린다는 말로 비웃는 것도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이 가득하고 좋아하는 기억 가득한 오타루의 추억을 더듬으며 구태여 싫어하는 것들이 무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 즐거움의 기록을 유난이라 손가락질하고 오글거린다 폄하하는 것을 수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좋아하는 것을 드러낸다. 지금 벅차다고 들떴다고.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활자에 꾹꾹 눌러 담는다. 너무 행복했다고.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누군가에게 유난일 것이고 오글거리겠지만, 그보다 더 많이 벅차게 행복할 것이라 장담한다. 그리고 이 즐거움을 공감하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을 테다. 오타루에게 받은 첫눈이라는 선물을. 기뻤던 하얀 추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