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맛있나..?
사랑하는 엄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엄마는 요리에 재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고 엄마가 만든 모든 음식이 맛이 없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엄마의 제육볶음과 닭볶음탕은 누구에게 먹여도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맛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대표 요리다.
엄마의 요리 솜씨 덕분인지 우리 가족은 먹는 것에 큰 흥미가 없다. 맛있게 먹으면 좋지만 매 끼니에 진심인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빠가 변했다. 퇴직 후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맛을 분석하더니 "맛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평소에 맛있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아빠가 갑자기 그러니 궁금해 몇 번 먹어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아빠는 아빠가 한 요리는 다 맛있다.
목포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귀하게 자란 아빠. 당시 동네에 텔레비전이 두 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빠 집에 있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다 함께 김일 레슬링을 보기도 했단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이 망해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아빠는 14살, 그 여름에 유리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큰 고모가 라디오에서 우연히 야학 소식을 듣고 아빠에게 권했다. 아빠는 대학생들이 어렵게 사는 청소년들을 가르쳐주는 야학에 다니게 됐고, 덕분에 검정고시를 합격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가난의 딱지는 생각보다 견고해 떼어내기 어려웠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했고, 갈 수 있는 길을 찾아갔다. 대학교는 못 가도 해병대는 들어가 어엿한 해병대생이 되기도 했고 경찰이 되어 강력계 팀장으로 30년 넘는 경찰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녹록치 않은 인생을 살아서일까, 아니면 너그러움이 허용되지 않는 법망 속에서만 일해야 했던 직업의 특수성 때문이었을까. 난 아빠가 힘들었다. 필요 이상으로 객관적인 말만 하는 아빠가 힘들었고, 가족을 포함해 타인에게 너그럽지 못한 아빠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이 보여 힘들었다. 차라리 대놓고 나쁜 아빠였다면 시원하게 욕하며 정정당당하게 싫어했을텐데 가장으로서 최선은 다했기에 욕할 수 없었다. 싫어하기엔 죄책감이 들었다. 말하자면 '나쁜 아빠'라기 보단 좀 난감한 아빠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아빠 요리만큼은 다 맛있나 보다. 아니, 맛있어야 하나보다. 어릴 적 그가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삶’을 가족에겐 주고자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가족만큼은 아빠의 요리를 맛있다고 인정해 줘야 하나 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그간 받은 상처와 아픔이 많아 쉽게 “맛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빠는 왜 유독 아빠 요리에만 관대한지 되려 납득이 되질 않는다. 아빠가 먼저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다면, 엄마의 요리가 맛없어도 때로는 맛있다는 따뜻한 빈말을 해 줄 줄 알았다면, '평범한 수준의 삶' 전에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포용하는 삶'이 가족의 관계를 맛있게 해준다는 걸 알았다면, 그랬다면 나도 아빠의 요리가 맛있다고 했을 텐데… “맛있다"는 말이 무겁고 버거워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다. 그렇게 난 또 아빠의 요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빠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젠 내가 먼저 “맛있다”는 말을 해야할 때가 됐다.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온 아빠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가 됐다. 특별한 이유나 계기는 없다. 굳이 꼽자면 사소한 따뜻함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이해랄까. 유리 공장에서, 해병대에서, 경찰서에서만 자라온 그가 받아본 따뜻함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경험한 만큼의 범위 안에서 행동한다는데, 일생을 배고프고 치열하게 살기만 한 그에게 너그러움을 기대한 내가 되려 잘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따듯함을 건네려 한다.
재미있게도 마침 가족 단톡방에 아빠가 카톡을 보냈다.
'고구마 삶아 놓았으니 드셈'
집에 가서 고구마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아빠에게 엄지를 한껏 올려주고싶다. 그리고 말해야지.
"아빠! 아빠가 삶아서 그런지 고구마가 너무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