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유병기 (有病記)

어려움과 서러움

by 징느

아이는 병원에 갈 때마다 채혈을 했다. 당연히 아이는 채혈을 싫어했다. 아이는 대학병원을 “피 뽑는 병원”으로 불렀다. 남편은 타지에서 근무했고, 나도 회사를 다녔다. 내가 운전을 못해서 진료는 주말이 껴있는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받아야 했다. 월, 금에 교수님의 진료 일정이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남편과 나의 휴가를 조율하는 것도 일이었다. 나는 거의 병원 진료를 위해서만 휴가를 사용했다. 료는 1~2달 간격으로 잡혔지만 매번 휴가를 쓰기 어려웠고, 아이가 채혈을 싫어했기에 진료 일정을 미룬 적이 많았다. 아이의 치료는 약을 제때 먹고 그에 따른 수치를 보는 게 전부였기에 진료를 미뤄도 찮았다. 아이가 채혈로 힘들어한다는 얘기에 교수님이 먼저 진료를 보는 간격을 늘려주기도 했다.


병원 가는 날, 아이는 병원에 가기 전까지 적지를 모른다. 진료가 반복되자 나는 아이에게 “피 뽑는 병원”에 가는 걸 미리 아는 게 나을지, 아니면 병원에 도착할 즈음 아는 게 나을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병원에 도착해서 아는 것을 선택했다. 아이는 뽑는 병원에 다는 걸 안 순간부터 긴장으로 표정이 굳는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채혈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이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를 무작정 잡아끌 수도 없다.(아이는 팔이 자주 빠지는 체질이다...) 피를 뽑지도 않으면서 아이에게 매번 찮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했다. 아이는 대개 남편에게 안 채로 울며 채혈실에 들어갔다.


아이들의 채혈은 보통 의료진 2명이 진행한다. 채혈실에 아이가 들어오면 채혈을 하지 않는 의료진이 일어나 아이의 채혈을 도우러 온다. 한 명은 채혈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보호자와 함께 아이를 제어한다. 처음에 아이는 1명의 의료진만으로도 채혈이 가능했다. 아이가 어려서 우리 선에서 제어가 되기도 했지만 비교적 얌전하게 채혈을 하는 편이었다. 아이가 옥토넛에 빠져 있을 때에는 바나클 대장처럼 북극곰의 힘을 이야기하며 아이를 북돋아주었다. 아이는 바나클 대장처럼 기합을 면서 채혈을 할 때도 있었고, 울지 않고 조용히 채혈을 하기도 했다. 주변의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칭찬하며 아이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채혈이 반복되면서 아이에게는 두려움이 생겼다.


어느 날, 채혈실에 들어갔는데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가 채혈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돌려가면서 온몸으로 채혈을 거부했다. 그 아이도 채혈을 많이 했던 것 같았다. 의료진이 보호자와 함께 아이를 설득하면서 제어하고 있었다. 그 사이 우리 아이의 순번이 울렸는데 하필 그 옆자리였다. 채혈하는 의료진이 아이를 보더니 조금은 난처한 표정으로 채혈을 잘하는 편인지 물었고, 난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는 옆자리의 아이처럼 채혈을 거부하며 울었다. 그 이후부터 아이의 채혈에 대한 거부감은 더 심해졌다. 마치 그래도 된다는 걸 배우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의 채혈 때문에 가끔씩 나의 어머니는 진료를 중단하자고 말하곤 했다. 빈혈 진단은 나에게도 의아한 일이었지만 아이의 주 양육자인 나의 어머니에게 매우 큰 의문을 남겼고, 그 의문은 의심으로 이어졌다. 여태까지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었던 아이였기에 어머니는 지금 이 진료가 아이를 잡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도 검사를 받아보면 아이와 같은 진단이 나올 거라며 커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여겼다. 남편도 그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는 이 채혈이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것이라고 걱정했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트라우마 때문에 진료를 받지 않았다면 과연 아이가 커서 이 결정에 대해 뭐라고 생각할까. 진료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채혈 후 2시간이 지나야 결과가 나와서 진료를 볼 수 있다. 그동안 시간을 때우는 것도 일이었다. 처음에는 책이나 장난감을 따로 챙겨가서 놀았지만 매번 챙기는 것도 일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갔다 내려가 반복하고, 로비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기도 했다. 에스컬레이터는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외정원과 스카이워크를 번갈아가며 시간을 때웠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라 병원 안에서 뭔가를 먹는 것도 걱정이었다. 처음에는 간식도 챙겨갔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1시간 30분 정도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고, 진료실로 향해서 신체 계측을 하면 예약 시간과 얼추 비슷하게 맞출 수 있었다. 진료지연만 없다면.


진료실에서 접수를 하면 담당 교수의 진료 지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아이의 진료실은 암센터에 있었고, 대부분의 환아들이 소아암을 앓거나 앓았던 아이들이었다. 아픈 아이들은 너무나 많았고, 시간이 걸리는 진료도 많았다. 한 번은 아이의 앞에 외국인 아이가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통역사까지 진료실에 들어가서 시간도 굉장히 많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료 지연은 일상이었고, 심할 때는 1시간이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날은 하필, 남편이 휴가를 쓰지 못해 나와 어머니와 시아버지가 함께 병원에 간 날이었다. 전 날 밤늦게 퇴근하신 시아버지는 아침 일찍 나와 어머니,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주셨다. 끝나는 시간을 대강 말씀드리고,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진료가 지연되어 예약시간에서 1시간 후에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시아버지는 점심도 못 드신 채 병원 앞에서 계속 대기하고 계셨다. 장마기간이라 날도 우중충한 하루였다. 맞벌이인 우리는 아이의 치료도 알아서 해결할 수 없었다.


진료는 현재 먹고 있는 철분약의 추가 처방이 필요한지 묻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원래는 원외 처방이었지만 약국에서 소소하게 몇 가지 사건이 생긴 후부터는 원내 처방으로 받기도 했다. 원외에서 약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방전에 기재된 용량이 약국에 없어 다시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야 된다는 말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시아버지와 병원을 갔던 그날이었다. 진료가 늦어져 약국에 갔을 때는 병원은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병원에 다시 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다행히 약국에서 병원과 해결하기로 하고 약을 받을 수 있었다. 또 병원과 약국을 다녀온 후 뒤늦게 약국에서 결제 금액이 잘못되었으니 추가로 돈을 입금하라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결제한 금액이 원내 처방 시 결제한 금액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따졌다. 약국에서는 원내 처방의 금액이 잘못됐을 거라고, 그 용량으로는 그 금액으로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내 처방의 금액도 맞았고, 원외 처방의 금액도 맞았다. 아이의 약이 비급여라서 발생한 일이었다. 원내 처방과 원외 처방의 약값은 천지차이였다. 병원 근처의 약국에서는 해당 약을 모두 비싼 금액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다행히 집 근처의 약국에서 해당 약을 저렴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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