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사용법

파리지엔이 소리 내는 법

by 곽미성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거나, 샹송을 조금이라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거다. 대체로 프랑스 여배우들 혹은 가수들의 목소리는 영미권의 여성들처럼 또랑또랑하거나 가늘고 높지 않다. 프랑스에선 여성들의 낮고 무게감 있으며 따뜻한 목소리, 허스키하고 적당한 습기가 묻어 있는 목소리를 좋아한다. 샤를롯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 멜라니 로랑(Mélanie Laurent), 마리옹 코티아르(Marion Cotillard) 같은, 파리지엔들에게도 일종의 아이콘이 된 이 여배우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녀들의 이미지가 많은 부분 그런 느낌 있는 목소리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목소리를 가졌건 파리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부드럽고 나직하게 조율된 말소리를 낸다. 이런 파리지엔의 말하기 스타일은 영화 속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아무리 ‘센’ 캐릭터의 배우여도 그 강인함은 우렁찬 목소리로 표현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드라마 속 악다구니 쓰는 아줌마 캐릭터는 프랑스에서는 액션 영화에서도 보기 힘들 거다. 방송 뉴스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안의 심각성과 위기감을 표현하기 위해 방송 앵커들이나 기자들이 보다 긴박하게 목소리를 높이는데 반해, 프랑스의 경우엔 아무리 심각한 사안이라도 흥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늘 침착한 톤으로 자연스럽게, 그야말로 차근차근 사안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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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표 채널 TF1의 여성 앵커였던 클레어 샤잘(ClaireChazal)의 경우, 그 목소리의 색깔만 보면 우리의 기준에서는 절대 방송과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될 것이다. 그녀의 허스키하고 습도 높은 저음은 흡사 애연가의 목소리를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프랑스 시청자들은 이런 그녀의 목소리를 관능적으로 느꼈고, 조용히 대화를 주고받는 듯 편안하고 차분한 스타일의 진행은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TF1 방송의 주말 메인 뉴스를 24년간 진행해오다 얼마 전 58세의 나이로 하차했다. 그녀가 시청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긴 2015년 9월 어느 일요일의 뉴스는 평소의 두 배에 가까운 40%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처음엔 프랑스어의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이 언어의 발성법 자체가 다른 언어와 달리 더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 언어를 배우고 실제 말해보니 그건 비단 언어 자체만의 마력이 아니었다. 나의 프랑스어는 파리지엔들이 말할 때처럼 귀에 착착 감겨오지 않았고, 촉촉하고 나직한 샹송의 느낌이 나지도 않았다. 파리의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보거나 같은 불어권인 아프리카 지역들 혹은 캐나다 퀘벡에서 말하는 프랑스어를 들어봐도 그랬다. 같은 언어지만 이 지역들에서 들려오는 말의 느낌은 아주 달랐다. 결국 언어 자체의 성격이 아니라 말하기의 방식, 일종의 연출에 따라 푹신하고 편안하게 감겨오는 벨벳 소파도 되었다가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도 되는 거였다. 이런 차이를 지역별 엑센트 때문이라고 할 텐데, 그럼 왜 유독 파리의 엑센트는 더욱 우아한 걸까?


파리지엔들은 소리를 조율한다.

후천적인 노력으로든,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청각적인 환경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서든, 그녀들은 부드럽게 말하고, 소리의 데시벨을 조절한다. 프랑스어가 가장 아름답게 들릴 수 있는 방식으로 소리를 연출하는 듯 보인다. 한 파리지엔 친구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 맞아, 우린 정말 어렸을 때부터 부드럽게 말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혔던 것 같아… 그래서 지금까지 외국인들의 말소리가 교양 없이 느껴졌던 거구나, 특히 미국인들 말이야! »


수많은 인구가 파리라는 작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다 보니 파리 시민들에겐 타인의 영역을 배려하고 내 개인의 영역 또한 배려받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나직하고 차분한 소리, 하지만 그 안에서 따뜻하고 촉촉한 느낌을 갖는 목소리를 매력적이라 여기게 되고, 그런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게 되지 않았을까.

목소리는 선택된 사람에게만 가 닿는 데시벨로 은밀해지고, 그렇게 관능의 한 축이 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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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엔들의 여러 가지 특징을 풍자해 놓은 어느 프랑스 웹툰에서 그녀들이 ‘하루에 담배는 한 갑씩 피우면서 음식은 유기농만 먹는’ 아이러니를 꼬집어 놓은 것을 보고 한참을 웃은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유기농 제품들로 대표되는 웰빙을 추구하면서도 파리지엔들 중엔 정말 애연가가 많다. 노천카페에서 와인 한잔 혹은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을 두고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어쩌면 가장 파리지엔스러운 이미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왜 그녀들이 애연가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문화적 이유들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엔 아마도 여성이 흡연하는 모습에서 풍기는 도시적 아우라에 대한 동경이 가장 클 것이지만, 흡연으로 얻어지는 음색이 좋아서 라는 답변 또한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매력적인 음색에는 진정 그렇게 치명적인 위력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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