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자리 #1

꽃이 피는 자리

by Maya

순순히 “잘 살아” 하며 나를 보내던 그의 모습은 지난 3주간 내 안에서 충격으로 돌고 또 돌았다.
그에게 내가 있어야 한다고 언제나 생각했다.
아니, “떠나지 마” 하며 나를 잡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담담하게 ‘쿨’ 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잘 살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단 말인가.
절대 먼저 칼을 뽑지 않는 그의 성격으로 본다면 그가 우리의 결별을 더 원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난 몇 달을 뒤돌아보면 나보다 그가 더 잘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고깝고 밉다.
얼마나 큰 착각이었나. 얼마나 큰 에고였나. 나의 이성과 감정은 얽히고 꼬인 실타래처럼 다시는 풀어내기 힘들 듯 보인다.


나는 캄캄한 동굴 속에 들어앉아 한 발짝도 밖을 향해 내디딜 수 없는 마음으로 마흔일곱 번째 생일을 맞았다. 생일인데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는 친구의 따뜻함을 거절 못해 억지로 햇살 속으로 나를 밀어 넣으며 타운으로 나왔다. 모두는 여전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식당 앞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자들은 여전히 맥주를 마시고 2012년을 끝으로 지구는 망할 거라고 얘기했던 자들은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대며 언제 언제 지구가 망할 거라 얘기한다.


두어 시간 친구와 밋밋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지금 집에 가려고?” 친구는 묻는다.
“응, 고양이 밥도 챙겨줘야 하고 몇 가지 할 일도 있어.”
언제나 만나면 기쁘고 서로 나누는 얘기가 즐거운 친구와의 시간도 오늘은 기분이 나질 않는다.


“그래, 그럼 나도 걷고 싶으니깐 너랑 같이 걸을게.”
친구와 나는 조용히 얘기를 하며 내가 사는 집을 향해 걸었다.


내가 사는 집이 보일 즈음 분명 닫고 나온 대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놀라 한숨에 집까지 뛰었다. 대문 안으로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대로 멍 하게 몇 순간을 서 있다가 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알고 보니 몇몇 친구들은 나를 위해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점심을 먹은 친구는 내가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도록 집까지 같이 걷겠다고 했던 거고 다른 친구는 먼저 내 집에 도착해 풍선을 달고 촛불을 켜고 꽃잎을 뿌려놓고……. 얼마나 감사한가. 얼마나 귀한 사랑으로 그들은 나를 보듬고 있는가.


하얀꽃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죽음의 의미는 또 다른 시작이다.


흰꽃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죽음은 끝과 시작을 동시에 의미한다고, 다시 나의 꽃을 피우라고,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안으며 친구는 말한다. 그 사랑 가득한 말에 나는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차라리 소리라도 지르며 엉엉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울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눈물은 언제나 목까지 올라오다 멈추고 말았다. 그러더니 마치 봇물이라도 터진 듯 눈물은 흐르고 또 흐른다. 얼마나 그렇게 울었을까, 마음속에서 나오는 눈물은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고 가슴속에 시원한 바람이 드는 걸 느끼며 난 그녀들의 농담에 웃고 있었다.


뒤 이어 다른 친구들과 나와 10년을 넘게 부부로 살았던 그가 친구가 되어 결별 후 처음 맞는 내 생일을 같이 보내기 위해 왔다. 우리 모두는 땔감을 모으고 불을 피우고 그릴을 달구고 호박을 굽고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며 웃었다.


나는 그들과 같이 웃으며 어둡고 긴 밤을 보낸 후 눈부시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서 있는 나를 보았다.

“A, D, B, F 그리고 과거엔 남편이었고 지금은 친구가 된 Y, 정말 고맙다! 그대들은 나의 용기이고 힘이다. 그대들을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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