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속에 빠지다

바나나로 감잣국 같은 국을 끓인다

by Maya

"해를 기다리는 것이오?"

아침 일찍 명상 자리에 앉아있는 내게 산 아래 사는 아저씨 마르셀로는 지나가며 인사를 건넨다.

'해를 기다려? 흐음, 괜찮은 표현이네' 생각하며 "녜. 일하러 가세요?"

"그렇소."

"이따 내려가실 때 바나나 20개만 갖다 주세요."

"알았소."


그리고 그날 오후 그가 말 위에 싣고 온 바나나는 두 꼬다리였다.

바나나 한 개에 10센트이니깐 2달러로 충분했을 것을 엉뚱하게 7달러가 나가고 말았다.

이렇게 그와 나의 소통은 이렇게 '얼렁뚱땅' '숭구리 당당' 이어진다.


그가 두 꼬다리를 갖고 왔어도 내게 2달러 밖에 없었다면 '그냥 20개만 주세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서 바나나 꼬다리를 자르고 말에 싣고 하며 정성을 들였을 것을 생각해 "그래요. 그럼 내려놓으세요. 하지만 담엔 제게 부탁한 만큼만 갖다 주세요" 하고 두 꼬다리를 받았다.

그럼에도 이 거래는 바나나가 내 집으로 배달이 되었다는 점에서 나에게 손해 되는 장사는 아니다.


어찌 되었건, 두 꼬다리의 바나나를 받아놓고 요즘 나의 먹거리는 온통 바나나이다.

바나나빵, 바나나 스무디, 바나나 국.

익지 않은 초록색의 바나나 껍질을 벗겨 잘라 국에 넣으면 감자 맛과 비슷하다.

감자 대신 바나나 넣고 마늘, 양파를 넣으면 좋은 한 끼 식사가 될 국이 된다.


DSC_8774.jpg 두 꼬다리 바나나-나는야 바나나 부자
DSC_8797.jpg 바나나 모서리가 둥그러워지면 나무에서 꼬다리를 잘라낸다.
DSC_8798.jpg 바나나빵, 바나나스무디, 바나나국

오늘 산에 손님이 올 것이다. 때로 그립고 만나면 반갑고 좋은 아름다운 그녀다.

"그리울 때 만나는 만남에 영혼의 울림이 있다"고 법정스님께서도 말씀하셨다.

그리울 때 만나니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욕도 충만하고 그저 좋을 뿐이다. 그러니 좋은 기억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고 좋은 기억은 내가 업고 가는 나의 업이 되는 게 아닐까 한다.


아, 오늘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날인가 보다.

떠오르는 몇몇의 얼굴이 그립고 아직 만나지 못한, 하지만 언젠가 만나게 될 그런 이들도 그립다.

손님맞이 청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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