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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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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24. 2020

사랑과 책임에 대하여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20191221




모든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연인이나 가족처럼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식물이나 동물 등과의 우정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제 뱃속에서 태해서 낳고 기르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책임은 그 어떤 관계보다도 순도 100%의 것이다. 애초에 세상에 없던 존재가 콩알보다도 작은 심장의 뜀박질을 시작으로 존재가 3kg의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X와 Y를 제공하고 자궁을 내어준 부모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여기서 책임은 시작된다. 그리고 어딘가 제 모습을 조금씩 닮은 대상이 꼬물거리며 성장하고 눈을 맞추며 웃는 동안 애정은 풍선처럼 부푼다. 물론 책임감 역시 마찬가지다. 



며칠 전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봤다. 

찰떡이는 내 품에 안겨 막 낮잠의 한가운데에 들어간 참이었다. 개봉 후 워낙 이슈가 되었던 터라 영화 전반의 스토리는 물론이고 결말의 세세한 부분까지 아는 영화였다. 하지만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정오의 기운이 조금 남아 있는 오후, 그렇게 에바(틸다 스윈튼)와 케빈(에즈라 밀러)을 만났다.



영화는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에바와 그녀의 아들 케빈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세상에 완벽히 준비된 엄마는 없다. 어느 정도 각오하고 육아를 시작해도 지쳐 백 번쯤 울고 마는 게 엄마라는 역役이니까. 에바는 임신한 기간을 포함해 출산한 뒤에도 아기의 존재에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불행해 보였다. 말도 못 하는 아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네가 태어나기 전이 더 행복했어."라고 무덤덤하게 얘기한다. 어린 시절 내내 케빈은 에바의 따뜻한 관심은커녕 관심 자체를 받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자비한 영화의 결말이 모두 에바, 즉 엄마의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말을 은연중에 무시하고 에바만의 노력을 강요한 남편과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아들의 행위와 거짓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모든 캐릭터의 감정과 행위가 뒤엉켜 붉은색(토마토 축제, 페인트, 붉은 공, 피, 살인)이 되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쓰다 보니 금세 한계를 느낀다. 전문가가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영화 평론은 이동진(좋아하는 영화평론가)에게 맡기자. 



비평이 아닌 그저 한 아기의 엄마로서 이 영화를 본 뒤 느낀 두 단어는 결핍과 책임이다. 자식이 원초적이고 극단적인 사랑의 결핍으로 벌인 사건을 엄마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바라보고 지키는 것이다. 이만큼 '엄마'의 역할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또 있을까. 진심 어린 관심과 이해가 부재한 관계가 이끈 잔인한 결말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감독인 린 램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싶었다.' 

그 두려움의 근본은 책임이 아닐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인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서툴고 부족하지만 이유 모를 연유로 우는 아기를 달래고 안는다. 그리곤 아기의 욕구를 알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하지만 분명 엄마도 인간인지라 가끔 울컥하기도 하고 다 놓아버리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 모든 감정과 상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모두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엄마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가를 돌보다 지칠 땐 그저 아기의 웃음에 기대 잠시 쉬어갈 뿐이다. 

사랑과 책임을 등에 업고. 



그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찰떡이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내 품에서 곤히 잤다. 영화의 마지막, 흔들리는 케빈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아가의 보드라운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사랑한다, 우리 아가.’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아가를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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