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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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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22. 2020

보통의 하루

그 어려운 걸 우리가 해냅니다, 20191218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위치한 카시트엔 오동통한 아기가 앉아 있고 그 바로 옆 너구리를 닮은 엄마는 봄 새싹 같은 아가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자상한 아빠는 그 둘을 태운 차를 안정적이게 운전한다. 너구리는 운전수에게 묻는다.



"자기는 이런 식의 삶을 살 거라 생각해본 적 있어?"

"아니. 단 한 번도."



나 역시 단 한 번도 없다.

평범한 이들의 보통의 일상, 그 행복.

아예 이런 삶을 살아갈 줄 예측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간절히 꿈꾸기엔 이름도 모를 타국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불행한 미래를 짐작한 건 아니다. 그저 가족, 그것도 '평범한 가족'을 꾸린 내가 상상되지 않았을 뿐이다. 연애만 하며 혼자서 인생을 즐기고 살 줄 알았다. 이유는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왠지 두렵고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평범의 길을 걸을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은밀히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혼자서 놀며 살기에도 인생은 충분히 스릴 있고(?) 즐거웠다.

어찌 됐든 아마 모두에게 내 결혼은 의외였던가 보다. 결혼할 때 주위에선 퍽 놀랍다는 반응과 '너무 잘 생각했다'라는 말이 연신 쏟아졌다.


"의외다. 네가 결혼한다니. 근데 정말 너무너무 잘 됐다."


말을 강조하는 ‘너무’라는 부사가 두 번이나 반복된다. 심지어 그 말을 전하는 눈빛은 어찌나 진심이 절절하던지 흡사 눈 뜬 심봉사를 대하는 듯했다. 또 어떤 지인은 '넌 노처녀로 계속 살아갈 줄 알았다'라고 말했는데 조금 무례하더라도 한 남자에 속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 줄 알았다는 말은 괜찮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근데 처녀면 처녀지, 老 처녀는 뭔가. 처녀도 소녀처럼 나이 먹지 않는다. 여자는 평생 소녀고 결혼하지 않은 처녀는 그저 처녀일 뿐이다. 그리고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다 티끌이지 않은가. 나이고 시간이고.

(그러면서 노인 老 자에 눈에 불을 키는 나는 뭔가)



그렇게 보면 '나의 오늘'은 모두의 추리를 빗나간 하루다. 예의 그 여우 같은 마누라는 못되어도 너구리 같은 마누라로, 작은 아기 너구리를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

언젠가 엄마가 "야야, 인생 별거 없데이. 넘들 사는 것만치 살면 그게 성공한 인생 인기라. 평범하게 사는 기 제일 힘든 거라 안카나. 그래 사는 기 제일 큰 행복이다." 고 말했던 보통의 삶.

그 어려운 걸 내가, 찹쌀떡 군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보통과 평범의 반짝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 너구리는 엄마 아빠를 보며 연신 방긋 웃는다.

아빠가 웃으면 아빠를 보고,

엄마가 웃으면 엄마를 보고.

보낸 웃음보다 몇 곱절은 훠얼씬 밝게 퍼지는 웃음이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보통의 행복의 삶,

가장 중심엔 이 웃음이 있다.

짧게 자른 손톱 달을 닮은 눈이 생긋,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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