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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13. 2020

132일의 고백

나의 기록




매일 쓰는 글은 세수처럼 어느새 하루 일과가 되었다. 왜 난 피곤한 몸과 정신을 이 어둑한 시간에 깨워 의미 없을 문장들을 습관처럼 뱉어내는 걸까. 아가에 대한 기록이 목적이라면 정확한 신체 수치, 발달 사항만 써도 될 텐데 도대체 난 왜 내 이야기만 이렇게 주저리 내뱉는 것일까.



나의 외할머니는 매일같이 아침, 저녁 6시만 되면 하늘에 있다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도를 했다. 우리는 아직 눈 뜨지 않은 새벽 6시부터 한 시간, 일찌감치 식사를 마친 오후 6시부터 역시나 한 시간.

두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깨어 있는 그녀의 하루 중 거의 1/7이나 되는 시간이니 말이다. 게다가 두 시간을 최소 10년만 해도 7200시간이다.



그 오랜 시간 그녀는 누구에게 무엇을 기도했을까. 자식의 안녕에 대해? 당신의 무탈함에 대해?



찰떡이의 백일 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을 찾았다. 오늘은 아기가 태어난 지 132일 된 날이지만 지난번 촬영 때 너무 우는 바람에 미뤘던 것이다. 낮잠을 못 잔 상태로 촬영을 한 탓인지(촬영한 시간이 원래 낮잠 시간이었다) 아가는 계속 부루퉁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입을 몇 번 삐죽이기만 할 뿐 응앙응앙 울어대지 않아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지난번 촬영엔 제대로 취하지 못했던 엎드리기 자세와 앉기도 곧잘 한 덕분이다. 한 달 남짓의 사이 우리 아가는 또 성장했구나.

그리고 생각한다.

그게 일이지, 아가는 크는 게 일이야.



그렇다면 나의 일은 무엇일까.

아가가 크는 동안 더 울지 않도록,

불안하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일이다.



매일 같이 기도하시던 외할머니는 기억하건대 70이 넘은 나이, 그즈음 온몸에 배인 기도를 그만두셨다. 분명 더 이상 기도할 일이 없어서는 아닐 거다. 당신의 자식이 자식을 낳았으니 어쩌면 기도할 거리는 더 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친 몸 탓일까, 그녀는 탑처럼 쌓인 기도를 그만두었다.



나의 이 기록은 언제까지 일까.

모르겠다.

내가 더 이상 쓸 말이 없을 때일까.

그렇다면 다시 돌아간다. 나는 왜 아가의 생체 성장이 아닌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132일 동안 아가는 눈에 띄도록, 띌 수밖에 없도록 성장을 했다. 키는 15센티가 컸으며 몸무게는 4킬로가 넘게 쪘고 닫혀있던 까만 구슬 같은 눈동자로 이젠 제 엄마를 보고 환히 웃는다.

그동안의 우린 어떤가.

나와 아의 아빠 말이다.

글쎄, 크기는 다르겠지만 우리에게도 변화와 성장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에 더 이상 성장할 일이 있을까 했는데, 찰떡이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그 문의 열쇠였다. 학교나 사회, 심지어 조리원에서도 배우지 못한 일들을 이 작은 아가를 통해 배운다.



아가를 먹고 씻기고 재우는 것 외에도

기다리고 참는 것, 감싸 안는 것, 토닥이는 것.

숨을 함께 고르며 잠에 드는 것.

그리고 미숙한 글로는 표현하지 못할 수많은 감정을 느낀다. 어쩌면 난 그 빗물 알갱이처럼 쏟아지는 감정과 하루를 적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까만 새벽 모두가 잠든 방문을 열고 기도방에 들어가 당신의 하루를 고백한 그녀처럼 난 조용한 시간, 노트북을 켜고 내 방식의 고백을 한다.

오늘의 내 감정, 우리의 시간을 적어나간다.

다시는 오지 않을, 써 내려가지 못할 오늘의 하루를.




오늘이 그 132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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