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처음은 어려운 일
아기와 함께한 이래로 내일을 모르는 사람처럼 오늘을 산다. 하루씩 살며 오늘을 버틴다. -여기서 말하는 하루는 아가가 깬 시각부터 잠들기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물처럼 하나로 흐르는 시간이 아닌 제 따로 떨어져 분절되고 독립된 고드름 같은 하루들.
보이지도 않는 얼음 막대 같은 시간 속에서 '이렇게 해야 해', '이건 어떨까'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가는 달리기 경주의 거북이처럼 묵묵히 제 몫의 성장을 한다. 까만 구슬 같은 눈을 2주 만에 뜨더니 이젠 눈만 마주쳐도 까르르 웃고 다리 힘도 좋아져 뒤집기, 물장구 선수가 되었다. 건드리면 깨질까 도자기 인형 같던 아가가 150일 만에 움직이는 작은 사람이 되었다.
매일 봐도 경이로운 걸음이다.
아기들은 보통 4-6개월 사이에 이유식을 먹는다.
이유식을 준비하는 엄마가 될 준비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동네의 선배 엄마와 인터넷으로부터 조언을 얻고 책을 살폈지만 너무 많은 정보와 선택지에 혼란이 찾아들었다. 재료의 다양성과 영양을 생각한 그들의 각 잡힌 계획표가 아득하기만 하다. 아이 세제며 로션, 기저귀를 결정할 때도 그토록 헤맸는데 이젠 식재료를 고르는 일까지 더해지다니.
삶도 육아도 선택 투성 이건만 선택은 한 번도 쉬운 적 없고 점점 그 무게는 무거워져만 간다.
하지만 내게는 필살기가 있다. 하루치의 견디기 수법이다. 우선 당장 내일의 이유식을 생각하기로 한다. 초기 이유식의 첫 3일은 무조건 '쌀미음'이라고 하니 다른 건 제쳐두고 쌀미음부터 만들자.
유기농 쌀가루, 스파츌러, 계량기를 준비해 쌀가루 10g에 물 200ml를 찬물에 개어 끓였다. 둥글둥글 빙글빙글 저어가며 걸쭉할 때까지 끓인 죽을 3등분으로 이유식 용기에 나눠 식힌 뒤 냉장고에 고이 두었다.
그리고 이건 모두 어제 일이다.
오늘 몫의 쌀죽을 처음으로 찰떡이에게 먹였다.
숟가락을 쏙 입에만 넣어주면 냠, 하고 잘 먹을 줄 알았건만 이것 역시 초보 엄마의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일단 아기 의자에 앉히고 턱받이를 했더니 턱받이를 물고 뜯고 난리다. 또 간신히 진정시켜 한입 넣어주니 이젠 오만상을 짓고는 혀를 쑤욱 내민다. 이게 뭐야. 옅은 흰쌀 죽이 조르륵 아가 입 밖으로 흐른다.
내가 먹어보는 시늉도 하고 달래도 봤지만 아가는 결국 흐앙-울음이 터진다. 맛이 이상했을까, 식감이 싫었을까 또 난 알지 못한 채 시작으로 돌아간다.
아가를 들어 안고 둥개 둥개 어르고 달랬더니 품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어쩌면 그저 졸렸던 걸까.
그리고 30분 뒤쯤 ROUND 2.
다시 한번 도전이다. 쌀미음의 반은 아가의 입, 반은 턱받이에 흘러 들어갔다. 죽으로 흥건한 턱받이에 얼굴을 비비는 통에 얼굴에도 하얀 미음이 잔뜩 묻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쌀을 접하고 숟가락을 입에 댄 아가가 기특하고 사랑스러워 '잘했어, 잘했어' 연신 쓰다듬었다.
비록 소량이지만 흰고 흰 쌀이 부디 우리 아가 몸속에서 더 건강한 숨이 되기를. 이틀 뒤엔 주문처럼 외며 보글대는 쌀미음을 둥글둥글 저을 일이다.
우리 아가, 지금처럼 건강하자. 건강하자.
우리 아가, 사랑해. 사랑해.
아마 내일 역시 아기의 기분 좋은 시간을 골라 쌀미음을 줄 것이다. 오늘보다 더 잘 먹을지 오늘처럼 베- 하고 작은 혀를 내밀지는 알 수가 없다. 어차피 겨우 한 번으로 익숙해질 일은 이 세상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또 내일치 하루를 살 내일의 내가 겪어나갈 시간이다.
하루를 살아내는 엄마의 삶과 그 곁에서 시나브로 커가는 아기의 삶. 하루치, 하루치, 분절된 오늘이지만 언젠가 뒤돌아 보면 하나로 뭉뚱그려진 그리운 기억이 될 시간.
하지만 오늘은 그저 아가가 평온한 잠을 청하고 있으니 이걸로 되었다. 좋다.
나의 하루는 이걸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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