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아기 울음소리

모든 아기는 '으앙'하고 우는가

by 윤신




아기 울음소리를 상상한 적이 없다

멋모르던 이십 대엔 다섯은 꼭 낳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사실 아기라는 생명에 대해선 무지 그 자체였다. 기저귀의 생김새나 가는 방법, 이유식은 고사하고 실재하는 아기를 안아본 적도 없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아기 울음을 생각해봤을 리가 만무하다. 어쩌면 작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창문가에 둘 예쁜 사기 인형이나 화분, 아니면 곁에서 가릉 대는 반려묘 정도로 여겼던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다섯이란 숫자가 좋았던 지도.



티비에서 나오는 아기 울음은 그들의 울음소리에 대한 흥미를, 상상력을 떨어트린다. 복사한 듯 똑 닮은 으앙-하는 소리에 아기 개개인의 아이덴티티라곤 찾아볼 수 없다. 어딘가 동글동글 납작 비슷하게 생긴 작은 생명체들은 우는 소리도 그만그만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처음 실제로 들은 타인의 아기 울음소리는 또 어땠던가. 비행기 안, 식당 안에서 접했던 아기 울음의 소감은 그저 ‘시끄럽다’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어른의 것처럼 한 사람의 매력이나 성격, 성향을 보여주기는커녕 단순한 ‘소리’ 혹은 심지어 ‘소음’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의미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기의 울음은 정말 그럴까.

다 비슷비슷한 소음에 불과할까.



이젠 안다.

아기들은 무의미한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다. 그들의 울음엔 타당한 이유와 필요가 있다. 그러니 아기의 울음이 단순한 소리는, 더더군다나 소음은 아니다. 아직 어른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아기만의 언어인 것이다.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것을 무시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해선 안된다.

그것은 아기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안될 일이다.



찰떡이는 오늘 몇 번이나 한참 혹은 짧게 울었다.

‘날 안고 서서 둥가 둥가 해줘’

‘잠 오는 데 어떡할지 모르겠어!!!!’

‘배고파’

‘놀고 싶어’

‘깜짝 놀랐잖아’

아마도 이런 식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울음은 의문이라 어쩔 줄 몰랐고 그런 나의 태도에 아가는 더욱 크게 울어버렸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아기를 꼭 안고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달래는 것.



그래도 166일째 아가의 울음을 듣다 보니 조금은 울음의 높낮이와 표정으로 아기가 뭘 원하는지 짐작하고 진짜와 가짜 울음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물론 오늘처럼 완벽하진 않다. 같은 언어를 쓰는 대화로도 온전히는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다. 하물며 태어난 지 다섯 달 조금 지난 아기 울음과의 문답은 오죽하랴.

그럼에도 하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 어떤 아기 울음소리 중에서도 우리 아가의 것은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아가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당연하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아기 울음이지만 내가 오로지 귀 기울여 듣는 딱 한 명의 아기이니까. 그 아가의 으앙, 하는 울음이 내겐 동작의 신호탄이 되니까.



아기의 울음에 맞춰지는 일상과 행동반경이라니. 상상도 못 한 일들이 생활이 되고 내 전부가 된다.

아, 이렇게 엄마가 되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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