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엄마로 가는 머나먼 길

20200514,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지는 그 길

by 윤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번다한 하루 가운데 무엇을 잡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늘 탈락되는 나의 취향과 모자라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끄트머리에서 대롱거린다.



왜 항상 시간이 부족할까, 아이를 키우는 주제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탓일까. 생각해보니 난 아이를 갖기 전에도 손바닥에 해야 할 뭔갈 가득 쌓아두곤 했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제때에 원하는 만큼 이루어낸 적도 없었던 거 같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적당한 타이밍을 핑계로 피곤을 이유로 미뤄둔 일들 역시 한두 개가 아니다. 아무리 봐도 시간이 부족한 건 아윤이 탓만은 아닌 듯하다.



육아를 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분명 몸은 고된데도 이상하게 잡다한 생각이 는다. 하려는 일을 계속 미루는 반복되는 생활 속에 '난 과연 쓸만한-그러니까 쓸데 있는 인간인가'라는 생각도 그에 포함된다.

그런 씁쓸한 뒷맛을 느낄 때마다 찹쌀떡 군에게 토로하지만 그의 대답은 수학의 정석처럼 늘 정해져 있다.


"그럼- 자기는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일을 하고 있잖아."


그 대단한 일을 하며 요리조리 어떻게 하면 내 시간을 쓸까, 하고 틈만 보는 사람의 속도 모르고 말이지.



오늘은 아윤이가 세상에서 태어난 258일 중 세 번째 손가락에 들 정도로 힘든 하루였다.

이미 지나간 날의 힘듦의 경도를 분간할 순 없지만 아가의 엉덩이를 찰팍찰팍 때린 게 이번이 (아마도) 세 번째인 이유다. 새벽을 닮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몇 번을 심호흡하며 심중을 가다듬다 결국은 마음이 터졌다.


"나보고 어쩌라고!"


아기 띠 위로 통실한 엉덩이를 철썩 때렸는데 내 명치께가 저려온다. 뭐 하는 짓이지. 머리가 어지럽다. 깊은 심호흡을 한다. 미안해. 애써 웃는 내 얼굴이 어색한지 아윤인 더 자지러지게 운다.

온종일 스스로 (엄마) 자격을 의심했다. 열병 같은 숨을 토한다. 이렇게 '엄마'가 힘들고 아픈 거면 나 안 할래. 어리고 미련한 마음이 눈물과 함께 빙그르르 돈다. 터질 것 같은 감정이 오밀조밀 가슴께에 한동안 머무른다.

놓아야 할 것은 하고 싶은 일들만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난 그 방법을 모른다.



안고 달래다 지쳐 내려놓은 보행기에 앉은 아윤이는 퉁퉁 부은 눈으로 팔을 벌린다. 입을 삐죽이며 젖은 눈으로 날 찾는다. 다시 감정이 몰아친다.

미안해, 엄마가 잘 달래주지도 못하고.

미안해, 엄마가 알아주지도 못하고.

미안해, 미안해.

부모는 이유 없이 자식에게 죄인이 된다더니.

그러나 그것도 순간으로 지나고 그에 비해 하루는 길고 길다. 육아는 순간과 기나긴 하루의 무한한 반복인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기가 종일 칭얼대고 짜증을 낼 때엔 나의 호오는 중요치 않다. 열 개 중 하나라도 내 것을 선택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선택의 우위에 아기가 있는 까닭이다. 소란과 지난이 뒤섞인 하루, 그 어떤 포기라도 아윤이가 웃으면 충분한 보상이 된다. 내 시간이나 안위보다 아기의 웃음과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것. 정신없는 생활 가운데 내가 무엇을 잡고 무엇을 놓을지 결정하는 데 가장 기준이 되는 사항이다.

아마도 모든 엄마(를 포함한 육아인)들의.



사실은 그렇다.

찹쌀떡 군이 던진 수학의 정석 같은 말처럼 '아이를 기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 찰흙으로 조물조물 인간을 빚는 것보다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조금의 과장을 하자면 로댕의「지옥의 문」 속 여러 인물을 조각하는 것보다도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더 힘들 거라고도 생각한다.

팔 할이 넘는 시간을 아기에게 건네고 건강하고 날씬한 몸에 대한 기원은 살 속에 꼭꼭 숨겨 놓고는 '언젠가'의 바람들을 다 비우고, 그러도고 응? 또 비울게 남았어? 하는 놀람은 물론, 아이를 위한 한 명의 광대로 살면서 울컥이는 감정을 순식간에 진정시켜야 하는 득도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참으로 머나먼 길이다.

나의, 당신의 어머니가 지금껏 오고

우리가 이어 걷는 이 길은.





_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화둥둥 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