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3
여름 티셔츠와 양말 한 켤레를 사러 가는 길, 아윤이는 눈을 빛낸다. 집에선 볼 수 없던 북적임과 소란 사이 자리한 알록달록한 가게와 소품들. 길을 걷는 내내 고개를 쏙쏙 내밀어 까만 눈을 깜박인다. 점멸하는 신호등처럼 반짝이는 세상이 깜박깜박 꺼졌다 켜진다.
아가,
네가 "나 이거 하고 싶어!" 하면
엄만 "응, 그러자" 할 거야.
아가,
네가 "나 이거 먹고 싶어!" 하면
엄만 또 "응, 그러자." 할 거야.
목구멍까지 차오른 '가능하면'이라는 말은 꿀꺽 삼킨다.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은 말이 '가능하면'이란 말이다. 또 살다 보니 듣지 않아도 으레 이해하는 게 '가능하면'이란 말이다. 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쉽다.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게 대학 진학이라는 전제는 빼자. 고등학교 1학년 때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대를 목표로 한다. 인 서울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다 2학년이 되면 '연고대 정도는 괜찮지 않나? 고개가 슬그머니 기운다. 그러다 3학년이 되면 '인 서울은 가야지.', 만약 수능을 예상보다 못 쳤다면 '가능하면 인 서울이라도…' 혹은 '내년에 다시'하고 만다.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쌓인 시간의 지혜가 그런 헛헛한 것이라니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가능한 만큼 꿈꾸고 가능한 만큼 먹고 가능한 만큼 읽고 가능한 만큼 달린다.
그리고 가능한 만큼 선택한다.
인생의 동의어는 선택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그로 인해 사사로운 일상이, 마침내는 인생이 바뀌고 만다. 미처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 투성인 데다 애초에 선택의 폭마저 자유롭지 못하다. 이 모두 프로스트의 「가보지 못한 길」을 읽지 않아도 직접 살다 보면 알 일들이다.
내게도 선택의 순간이 왔다.
손에 쥔 몇 벌의 옷 중 먹색의 미키 티셔츠를 고른다. 아윤이도 조만간 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를 날이 오겠지. 어떤 옷을 고를까 벌써 궁금하다.
(어제 산책하던 중 옅은 하늘색의 엘사 옷과 파랑과 빨강의 백설공주 옷을 입은 두 자매가 씽씽이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두 공주의 모습에 정신이 뺏겨 그 뒤를 따르던 왕비의 표정을 못 본 게 아쉽다. 아이들이 그 옷을 골랐을 때 그녀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아마 자신의 기준보다 딸들의 마음을 가능한 존중해준 엄마의 표정이었겠지. 어쩌면 내 미래의 얼굴일지도.)
아가 눈에는 운동장만큼 커 보일 가게 안에서 아가는 전시된 옷을 잡고 당기려 애를 쓴다. 진열된 장식품도 만지려 여념이 없다.
요 작은 녀석은 점점 자라나 얼마나 하고 싶고 먹고 싶고 사고 싶고 만지고 싶은 게 많아질까.
얼마나 보고 싶고 듣고 싶고 갖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아질까.
그 수많은 욕구를 내가 모두 채워줄 수 있을까. 아마 아가를 목숨보다 사랑한다는 아빠도 그리해주진 못할 일이다. 우리의 역할은 아이가 가진 세상 모든 바람을 이뤄주는 것도 아니며 아이 앞에 놓인 모든 오르막을 밀어내는 것도, 우리가 부딪힌 그 높고 긴 수많은 벽에서 점점 물러나게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애초에 신이 정해준 부모의 몫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시작되는 도전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 벽에 부딪히고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설 힘을 길러주는 것. 흙 묻은 바지를 털며 다시 걷어갈 단단한 마음을 주는 것.
뭐 그런 것 아닐까만은 또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첫발은 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지켜보고 기다리고 믿어주는 거겠지.
마음 같아선
"오구오구 내 새끼, 하고 싶은 거 다해."
그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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