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5
오늘은 아윤이가 태어난 지 삼백일이다.
어릴 땐 삼백일이 된 연인에게 300원을 줬었는데, 싶은 게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엽다. 아윤이의 저금통에 300원을 넣으려다 아윤이 첫 연애의 삼백일에 300원을 주기로 마음먹는다. 엄마 땐 이게 유행이었어. 그러면 요 녀석은 뭐라 말할까.
아니 그땐 백 원짜리 세 개로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임신기간과 아기의 백일까지는 하루씩 늘어나는 숫자의 변화를 확인하며 매일 감격하는 시간이었다. 숫자의 단순 명료함으로 뱃속과 눈 앞의 아기를 실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우리'가 일상에 녹아든 지금은 아기의 이유식 단계와 개월 수에 따른 발달 때문에 가끔 태어난 일수를 체크하는 정도로만 바뀌었다. 중요한 건 아기가 태어난 지 며칠째가 아니라 그저 지금 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 이유다.
그런데 300일이란 숫자는 어쩐지 마음이 뭉클하다. 곧 365일의 순간인 첫 생일을 맞이하게 되어서일까, 반올림할 일말의 여지없이 영으로 떨어지는 숫자, 백자 돌림의 여운일까.
삼백일 기념, 최근 근황을 세 가지 적어보려 한다.
아무 맥락도 없이.
1. 아윤이는 이제 10개월에 들어섰다.
그래선지(?) 주위에서 왕왕 물어오는 질문이 있다.
둘째는 언제?
가까운 어른이나 산부의과 선생님까지는 어찌 됐든 이해해 보겠지만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는 그러니까 왜. 나 대신 젖먹이를 하루 재워줄 것도 아니고 기저귀를 한 봉지 사다 줄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가족계획을 먼저 세우는 건 그러니까 도대체 왜.
형태는 다르지만 의미는 동일한 질문들을 받을 때면 핑퐁처럼 넘기는 대답, 아니 대처 방법이 있다. '새로운 아기'에 대해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다 내린 솔직한 답이기도 하다.
"누가 2년만 키워주면 낳으려구요."
정말 누가 2년만 키워주면 낳을 텐데. 그러면 그 힘들던 입덧도 십 개월의 임신기간도 호르몬의 망나니 같은 변화도 다 견딜 자신이 있는데. 그 대답을 들은 사람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지만 누군가의 것은 이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무슨 소리야."
아닙니다. 제가 그리 젊지 않아요. 그래서 하는 말 입니다만.
지나가던 아기를 쳐다도 안 보던 나지만 낳고 보니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하지만 둘은 무리일 것 같다. 그것도 새로운 한 명은 맨땅에 헤딩부터 시작 아닌가. 두 시간도 안돼 한 번씩 깰 때부터.
하아, 내가 좀 젊었더라면.
2. 새 다짐이 생겼다. 일어나자마자, 눈을 뜨고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마자 뽀뽀해야지. 아끼는 사람을 더 아껴줘야지. 어느샌가부터 나는 매일 아침 굽은 등을 하고 밝은 빛에 실눈을 뜬 채로 볼록한 배를 부여잡은 술 취한 이티의 모습으로 방에서 나와 그들을 맞는다. 그리고 가시지 않는 피곤에 도도도 부엌으로 달려가 물 한 잔부터 찾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윤이는 나를 보고 반기고 찹쌀떡 군은 밝게 웃어준다. 비위 좋고 착한 사람들 같으니. 그들의 웃음에 걸맞은 환대를 해야지, 생각한다.
또 육아로 인해 체력과 우울이 바닥을 치는 날이면 유독 예민하고 날 선 얼굴로 퇴근한 그를 맞는다. 종일 기다린 그가 조금이라도 늦거나 불퉁할 때면 복어처럼 독을 뿜어댄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고 다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다시 마음먹는다. '기분이, 몸 상태가 태도가 되지 않게'
그것도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3. '엄마가 행복해야 애도 행복하다.'
'내가 좀 배운 석사로서 하는 말인데 애착은 양보다 질이다.'
'네가 하루 종일 옆에 있는다고 하루 종일 같이 놀면서 웃어주지는 않을 테니까.'
'저 혼자 멍하니 놀고 엄마는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하루 종일보다 어린이집 다녀왔을 때 빡세세 노는 그런 한 시간이 더 좋단다.'
'얼마나 집중해서 놀아주느냐가 중요한 법.'
'보내라. 그러한 시대이니라.'
보육 관련 이야기를 하다 친구가 한 담박한 말이다. 한 문장 한 문장 모두 주옥같아 옮겨본다.
사실 어린이집을 언제 보내느냐는 개개인의 사정과 생각에 따른 지극히 사적인 일이라 타인이 입을 대기가 어려운 노릇이지만 그녀는 친구의 흔들리는 마음을 쓰다듬어 주기 위해 단호한 말을 썼다. 먼 관계였다면 어려웠을 그 단호함이 고맙다. 보내도 괜찮고 아니어도 괜찮을 거야. 다 너 하기에 달린 거 아니겠어?
애매모호나 두루뭉술은 적을 만들지도 않지만 딱히 내편이라 하기도 힘든 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돋을새김을 한 문장은 바로 첫 문장이다.
'아기는 엄마의 행복을 그대로 배운다'는 말과 닮았다. 아기가 배우는 것의 90%가 엄마로부터 비롯되는데 그중 행복도 포함된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걸 해줘도 엄마가 늘 우울하고 울고 있으면 소용이 없다. 매일이 특별하지 않아도 늘 같은 자리라도 일상에 함께 웃고 즐겁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역시 내일 아침 일어나 술 취한 이티의 모습으로라도 뽀뽀해 줘야겠다. 아윤이의 반달눈을 맞추고 함께 웃으면서.
삼백일.
벌써 삼백일인가 싶다가 아직 삼백일인가 싶다가.
또 우리의 삶에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삼백일밖에 걸리지 않은데 대한 놀람이 일다가 저렇게 사랑스러운데 당연하지 싶다가.
일렁이는 마음에 급히 아가가 보고 싶어 잠든 아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가, 우리 아가.
삼백일 축하해.
내일도 우리 신나게 놀자.
일단 일어나서 뽀뽀부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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