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엄마와의 통화

20200628

by 윤신


엄마와의 통화는 늘 어려웠다. 따로 살던 이십 대엔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8300km나 떨어져 있던 외국에선 몇 달에 한 번일까 말까. 그 가끔의 전화조차도 고작 2-3분이 될까 말까. 아주 전형적인 경상도 머스마(?)스타일의 엄마와 전형적인 경상도 가스나 스타일의 딸의 통화는 단문과 단답이었다.
"밥은 챙기묵고다니나."
"어. 당연하지. 엄마는 잘 먹제?"
"니나 걱정해라."


모녀의 대화는 고작 식사 여부 몇 문장 그리고 서로를 못 미더워하는 꼬리말 몇 문장뿐, 간신히 서로의 생사 여부만 확인하는 모양이다. (물론 몇 번의 예외도 있긴 했다. 내 인생 두어 번 정도로. 공중전화가 아직 드문 있을 고릿적 시절 이야기다.) 평생 길어질 것 같지 않던 단편의 통화가 장편으로 바뀐 건 결혼과 동시에 타지로 넘어오면서다. 어떤 마음이 우리의 통화를 길게 잡아끌었을까. 혹 결혼 전 단 둘이 살던 일 년의 시간이 새삼스레 서로의 생활을 궁금하게 만든 건 아닐까. 아니면 결혼식 양가 인사 때 본 그녀의 얼굴 때문일까.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낯선 얼굴, 내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등을 꽉 끌어안던 두꺼운 손. 찰나에 보인 그녀의 모습 말이다.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혼자 집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낼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길어진 통화의 대부분은 그녀의 손녀와 반찬 만드는 방법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감자를 사라는 단문의 문자를 보내더니 오늘은 10분 가까이 감자의 활용법에 대해 설명한다.


타박 감자를 해 먹어라, 그땐 소금을 먼저 넣고 물을 자작하고 넣어야 한다, 나중에 물 좀 따라 내고 설탕 넣고 뒤적이면 보슬보슬하게 되는 거 알제, 감자볶음도 해 먹어라, 볶음에는 파 기름이나 마늘 기름을 내면 좋다, 채 썬 감자는 물에 좀 담가야 하는 거 아나 모르나, 간장이 좋나 소금이 좋나 니 좋을 대로 넣어라, 맞다, 된장찌개에도 감자 넣어가 먹어라, 그때도 물에 좀 담가야 한대이.


판소리 하듯 읊는 그녀의 건너편에서 나는 가끔 추임새를 넣었다.
응, 응, 맞나, 어, 알겠다, 응.
판소리와 추임새가 끝나고선 1분 정도의 화상 통화가 이어졌다(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아윤아, 대구 할머니야. 할머니-해봐."

아직 엄마도 못 뗀 아기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이 아가를 지긋이 보던 엄마는 말한다.

"아윤이 어른같노. 아기가 아이네 이제. 다 키았네."

오해 말길 바란다. 그녀는 아윤이의 태도를 향해 말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화면으로 보이는 아기의 얼굴이 성인, 아니 아마도 어린이 같다는 뜻이었다. 아니 무슨 걷지도 못하는 10개월 아기가 다 컸다니. 물론 나 역시 가끔 아기에게 '아이고, 내 새끼 다 컸네'라고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정말이지 난 아직 아기의 손톱만 하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비록 실제가 아닌 초음파 너머의 세계였지만 말이다. 입덧이 한창이던 9주쯤 찾아간 병원에서 본 뱃속의 아가는 반달 모양의 자궁에 기대어 동글동글 팔과 다리를 꼬물거렸다. 얼굴과 몸통도 얼마나 동그마하고 작은지. 왜 다들 이 시기의 아기를 두고 '젤리 곰'이라 하는지 천 번 만 번 이해했다. 그 탁월한 비유에 감탄했다.

그게 작년 2월의 일이다.
그리고 2.47cm이던 젤리 곰은 이제 70cm를 훌쩍 넘는 아기곰이 되었다. 첫 자두를 먹곤 얼굴을 찡그리며 뱉기도 하고 호박고구마를 먹으며 책을 읽기도 한다. 이리 와, 하면 초여름 햇살처럼 환하게 기어 온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시작이다. 아직도 난 엄마가 되는 법을 배워가고 아기를 알아가는 그 출발선 즈음에 있다. 그러니 대답한다.
"다 키았기는 무슨. 이제 시작이지."


정말이다. 아직도 난 시작이다.
아침이 오면 엄마의 시작을 맞고 아기가 잠드는 밤이 되면 내일의 시작을 준비한다.
아가를 목욕시키고 재우고 나니 띠링, 문자가 온다.

「감자 반찬 했나」
「아니, 아가 이제 잠들었어」

나와 그녀 사이에 밥과 반찬은 필수 불가결한 대화의 시작이자 화제일 것이다. 아마도 평생토록.
마음 쓰는 그녀를 위해 내일은 포슬포슬한 타박 감자를 쪄서 사진이라도 보내야겠다.
엄마,라고 시작하는 문자를 쓰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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