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쉼표 하나

29200702

by 윤신

글쎄요.
무언갈 좋아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듯 삶의 모양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 어쩌면 별 모양.


저로서는 단 한 번도 나의 것을 미리 그려본다던가 궁금해한 적이 없습니다.
의도나 기대와는 다르게, 제 맘대로 흘러가는 게 결국 인생이라는 조금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했고 무언갈 설계하기엔 게으른 탓도 있고요. 기대를 하면 따르기 마련인 '그러면 그렇지 뭐'나 '이럴 줄 알았어' 하는 반응도 싫었습니다. '우와!'나 '이런 일이!'가 있는 감탄의 생生을 추구했다고 하면 거짓일까요.
씁쓸하지만 아마 그럴 거라 생각해요. 거짓 허세이자 미화일 거라고요. 아마도 전 그냥 실망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실망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대를 않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기대도 밑그림도 없는 내 인생에 가장 놀라운 시기는 작금입니다.
잘하지도 못하는 밥을 준비하고 시시로 바닥의 고양이 털을 닦고 그를 닮은 아기와 종일 씨름을 하는 '엄마'라는 역할의 이 순간 말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던 세상 모든 엄마, 각자 가진 이름보다 '누구 엄마'로 불리는 이웃집 엄마. 저 역시 엄마의 이름 아래 살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삶은 정말이지 꿈꾼 적도 기대한 적도 없습니다. 빨간 구두가 있어야만 찾아갈 수 있는 이상의 세계 같은 것이었죠. 아직도 엄마, 아빠, 딸 가운에 '엄마'가 나의 것이라는 게 신기할 노릇입니다.


가족의 삶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면 수학공식을 닮았을 거 같습니다. 합집합과 교집합, 뭐 그런 것들 말이죠. 내가 풀어볼 일이 없을 거라 여긴 삶의 방정식입니다. 모르기에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감정의 폭과 깊이, 쏟아지는 감정들이 합해지고 교차하고 탈락되는, 딱 떨어지지 않는 미지수의 집합. 상상만으로도 벅차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지금 전 꽤 잘해나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도 아윤이도 나도 모두 웃는 얼굴로 지낼 때가 훨씬 많으니까요. 물론 아닐 때도 많긴 하지만요.


오늘도 그 '아닌' 날 중 하루였습니다.
점점 제 의지를 보이고 표현하는 아윤이 앞에서 전 폭발을 억누르다 지친 화산처럼 뻘겋게 굳어있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터지는 화산처럼 눈물이라도 모두 쏟아내고 싶었지만 한 가닥 이성이 내 모든 동작을 멈추고 큰 숨을 쉬게 하더군요.
숨을 쉬어, 더 크게. 더 깊이.
더, 더, 더.



늘 부풀은 풍선처럼 공기를 뱉고 마는 제 하루는 아윤이가 태어나고서는 더욱 예측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모든 게 요 작은 생명의 몸과 기분 여하에 달렸습니다. 제 맘을 저도 모를 아이에게 나의 온 시간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니 씁쓰레하지만 이게 다 '아윤이 엄마'의 운명 아니겠어요. 이제 나의 특기를 발휘할 때입니다. 길을 미리 그리지 않았던 만큼 받아들이는 것 하나만큼은 잘하게 되었거든요.
찬찬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엄마의 가능폭은 엄마 이전의 것보다 커지긴 합니다) 내 몫의 책임과 시간을 쏟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울며 보채는 아윤이를 달래고 달래다 또 울컥 화나다 달래다 하는 사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어떤 모양의 삶을 그렸을까.'
생각은 이어집니다.
'뭐, 무슨 모양이든 상관은 없지만.'
(앞서 쓴 대로 그린 적도 없습니다)
동그라미, 세모 들을 이야기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모양도 정해지지 않은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삶에는 모양 따위 없을지도요.
받아들이고 내려놓고의 반복일지도 모릅니다. 점하나 쉼표 하나의 반복 말이지요.
인생이란 도형의 모습보다는 모스부호와 더 가까운 걸까요.


내일은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쉼표가 깃들기를 작게 바라봅니다.

손에 힘을 꼭 주다 느슨히 살짝 꼬리를 내려 잠시 쉬어가는 거지요.
저도 그럼 그 쉼에 기대고 맘껏 아윤이를 사랑하겠습니다.

내 생에 가장 큰 ‘우와!’를 불러온 나의 딸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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