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母校

2020년 8월에 딸과 함께 다녀온 모교에서

by 윤신

늙은 나를 상상한다.

나의 것일 노인의 눈동자가 낯설고 생경하다. 백발의 나를 그리는 날은 푸르던 지난 시절을 되새기는 날에 비해 얼마나 한없이 모자란가. 오랜 쓰임으로 약해진 몸 구석구석과 아기의 것을 닮은 조심스러운 걸음, 눈이 내린 흰머리칼을 지닌 나는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닮았을까.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를 뚫고(정말 뚫고 가는 느낌이었다. 상체를 숙이고 돌격! 외치며 뛰어들듯 말이다)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다. 겨울이면 소복이 쌓인 눈을 밟고 빙 돌아가야 했던 좁다란 산길이 떠오르고 봄이면 교정의 하늘과 바닥을 연분홍으로 가득 물들이던 벚꽃이 생각나고 초여름이면 뜨거운 햇살에 빛나던 도서관 앞 푸른빛 등꽃이 그리웠다. 가을 또한 그렇다. 학기가 다시금 시작하는 설렘은 여전히 나지막한 산 중턱에 단풍으로 물들어 있겠지, 문득문득 떠올랐다.

8월이 지나는 자리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지금도 여전할까, 열병 같았던 스물의 기억이 비처럼 함께 쏟아졌다.

두근, 두근, 두근.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아가는 내 뛰는 심장에 귀를 대고 가만히 잠에 들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시절 공간에서 딸과 함께 서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스물이라는 나이와 대학이라는 공간은 나에게는 과거형이지만 너에게는 미래형이지. 단 한순간이라도 나의 오늘을 바라본 어제가 있었을까. 너를 안고 이곳에 돌아온 나를 상상한 적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일이 년 후의 삶도 생각하지 않았지. 당장의 하루를 사는데 온 힘을 다 쓰며 내일이 없는 것처럼, 아니 내일도 오늘만 같을 것처럼 살았어. 영원은 없다 뇌까리며 청춘은 언제고 나의 것이라 생각했어. 연푸른 봄도 지나가고 장마의 여름도 이렇게 지나가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짙고 옅은 먹구름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아윤이의 숨이 따뜻하고 고르다.

아. 오랜 장맛비에 포도송이 같은 보랏빛 등나무 꽃도 이미 다 지고 말았겠지. 잠깐 산책할 수 있게 잠시라도 비가 그치면 좋을 텐데.



바람이 간절했는지 단순히 지나가는 비였는지 학교에 도착할 즈음 비가 그쳐 아윤이와 도서관 앞을 크게 돌았다. 코로나로 인해 교정은 잠든 아기처럼 조용하다. 방학 특유의 나른한 분주함도 없고 빗물로 진회색으로 물든 건물은 크고 과묵한 짐승 같다. 이미 진 등꽃 대신 붉은 능소화가 비를 머금고 인사한다.

안녕. 응, 안녕. 기운 내, 그들은 돌아올 거야. 그럴까? 그럼, 치기 어린 눈을 반짝이는 스물들은 다시 이곳에 찾아올 거야. 이곳을 지나간 청춘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청춘이 오고 가고 또 올 거야.

알지 못하기에 더 절실한 바람을 단언하며 웅덩이를 피해 폴짝 뛰었다. 후두둑.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돌아오는 길, 늙은 나를 상상한다.

지금과는 반대가 되어 나의 딸이 미숙한 내 걸음을 맞춰줄 그 언젠가를 생각했다. 처진 눈꺼풀 건너 부드럽지만 단단할 눈빛을 꿈꾼다. 스무 살의 아윤이를 그리다 그 곁에 선 노인의 나를 그리고야 말았다. 그땐 새치 염색을 할지 말지 따위 갈등하지 않겠지. 하긴 또 모르지. 난 평생 그런 사소한 일로 고민하며 살지 몰라. 찹쌀떡 군은 더 이상 렌즈를 끼지 않겠지? 손가락 끝의 감각은 둔해지고 떨릴 테니까. 하지만 이것도 모를 일이야. 그는 항상 그의 식대로 말쑥하게 자신을 잘 꾸미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안경을 쓴 중년의 그도 멋스럽겠네. 그나저나 우린 아가의 탯줄과 배냇저고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른이 되어도 아윤이는 우리에게 작은 아기일 테니까.



이대로 나이 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늙은 나와 늙은 그,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작은 찰떡이일 아윤이.

왠지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린다.

두근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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