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씩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참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구름은 높고 하늘은 더 높은 곳에 서있다. 매일 보는 구름은 단 한 번도 같은 자리에 있던 적 없지만 하늘을 떠난 적도 없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오후, 시계는 이제 막 네시를 지나고 어제는 아윤이의 사백 일이었다.
얼마 전부터 혼자 서서 걷기 시작한 아윤이는 이제 온 집안을 총총이며 다닌다. 한 발짝씩 조심스럽던 발은 몇 주 만에 능숙하고 과감해졌고 이 집에선 더 이상 아기의 시선과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아이의 안전과 엄마의 안심을 위해 설치해 둔 아기 울타리(베이비룸)는 이미 해체한 지 오래다. 울타리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냐옹(고양이들에게 배웠다) 거리다 얼떨결에 문을 열고만 아윤이에게 울타리는 얼마나 부질없는 방해물인가. 닫힌 방문도 깨금발을 들어 찰칵이다 열고 마는 아이에게 낮은 울타리쯤 파도 아래 모래성이다.
광개토 대왕처럼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아가로 인해 '해도 티 안 나는 업무'가 늘었다. 바로 제자리 두기다. 서랍을 열고 물건을 쏟아내곤 총총, 책장의 책을 다 꺼내고 총총, 장난감 통에서 인형과 모든 장난감을 엎어놓고 총총, 선반의 물건을 다 떨어트리고 총총, 한가로이 길을 떠나는 아윤이의 꽁무니 뒤로 줄지은 사물들의 원래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다. 물론 책과 장난감 엎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바람에 보통 저녁 즈음 한꺼번에 치우지만 낮 동안 한 번쯤은 제자리에 넣기도 한다. 혹시 아기가 발에 걸려 넘어질까 싶은 염려에서다.
그렇게 아기가 널브러뜨린 살림을 제자리로 두는 일은 갓 생긴 습관처럼 하지만 사실 나는 여전히 정리에는 젬병이다. 특히 내 물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짜다만 털실, 읽다만 책, 호호바 오일, 안경집, 오늘 맨 가방은 지금도 식탁 근처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언제고 필요할 것 같아 그대로 뒀지만 쓰이지 않은 채 아마 며칠을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문득 이런 사물의 산더미를 보고 아윤이가 배우진 않을까, 나도 못하는 정리를 어떻게 알려주나 따위의 걱정이 스물 올라온다. 불안의 금이 쩍 간다. 걱정과 불안만큼 금방 몸집이 커지는 감정도 드물다.
'육아엔 엄마의 방식과 성향이 중요하다는데 난 그 어떤 면에서도 자신이 없어.'
일 년이 지난 육아는 아직도 낯설고, 비슷한 모양의 시간에도 마음은 요동친다. 아이의 걸음은 성큼 저 멀리 가는데 나는 이제야 배밀이를 시작한 것만 같다. 토끼와 달리기 경주하는 거북이 꼴이다.
생각해보면 우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나 엄마와 딸로 각자의 첫 숨을 토했다. 아이는 세상을 알아가고 나는 엄마가 되어간다. 그런데 막 걸음을 떼고 자신을 얻은 아이와 달리 서툰 육아에 매달린 나는 점점 자신을 잃고 있다. 멀어지는 토끼를 보면 자괴감에 빠진 거북이 심정인 것이다. 참 나도 마음이 급하구나. 벌써 일 년이 아닌 이제 일 년이니 한 살짜리 엄마가 서툰 건 당연한데도. 하늘에 맺힌 뭉게구름을 보며 호흡을 한다. 정리 좀 못하는 엄마면 어때. 다시 한번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할 수 있는 걸 하자.’
‘느리더라도 거북이처럼 꾸준한 한걸음을 딛자.’
‘한가득 어질러진 장난감은 차곡 쌓고, 읽으려 꺼냈다가 못 읽고 만 책은 책장에 꽂고, 아기가 마시다 만 음료수는 마셔버리자.’
엉킨 실의 시작부터 풀어 하나씩 제자리에 놓는 연습을 한다.
엄마는 물건도 나 자신도 제자리에 둘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인지도, 잠시 비켜간 자리에서 이내 돌아오는 힘을 가져야 할 사람인지도 모른다.
흐트러진 책을 꽂다 창밖을 본다. 참나무는 흔들리지만 그 자리에 서있고 아직 해는 하늘 사이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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