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우리는 도시 섬에 산다

*아윤이와 산책 중에 녹음한 것을 옮긴 글입니다

by 윤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섬이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흙의 퇴적. 원래 세 개의 섬이었던 것을 하나로 이어 지금의 이곳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대략 사 년 전에 이곳에 이사 왔다. 이사를 오며 이런 시골에 오다니, 섬사람이 되다니 하고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여행객이 가득 찬 철도를 타고 서울로 나간 이유다. 하지만 그 시간과 공간에서 특별히 무언갈 한 건 아니다. 활기의 냄새를 맡고 더 많은 선택지를 찾았을 뿐이다.

일주일 중 그 하루를 뺀 육일 동안은 이 한적한 동네를 걸으며 늦봄엔 사방에 흩날리던 아카시아 향을 맡고 가을엔 건물 사이 공터에 핀 노란 들꽃과 갈대 사이에서 함께 흔들렸다. 별일 없는 섬의 별일 없는 계절을 살았다. 흰 눈이 가득 쌓인 겨울엔 조용한 사잇길을 걸으며 길고양이들의 안녕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가만히 산책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 거야.



자연이 터를 지켰던 시간에 비해 문명, 아니 자본의 속도는 터무니없이 빠르다. 아윤이와 하나둘 산책길을 알아가는 사이 아카시아와 너른 공터 대신 빌딩 숲이 자리했다. 모든 브랜드의 커피숍과 치킨집, 식당. 없는 가게가 없다. 이젠 집에서 걸어서도 큰 메이저 영화관과 스타벅스가 함께 있는 건물에 갈 수 있고 동네 인터넷 카페에서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프랜차이즈들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러니 생활이 더 편리해졌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이제 서울을 나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며 접할 수 있는 문명은 많고 먹고자 하는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젠 문명의 여유와 필요를 갈망하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소란을 불평한다.

차가 막힌다.

이상한 사람들이 늘었다.

지나치게 번잡하다.

엘리베이터 이웃이 엘리베이터 타인이 되었다.

이건 마치 도시와 다를 바 없다(이 말은 가끔 만족과 불평의 사이를 오간다).



그러고 보니 한 친구는 며칠 전 이른 새벽, 아마도 해가 붉게 오르기 전의 시간을 이야기했다. 집 건너편에 있는 송산을 따라 자전거를 타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크고 검은 것이, 아마도 개이리라 짐작한 커다란 검은 생명체가 아주 발랄한 걸음으로 8차선을 지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아마도 개이리라. 그는 다시 말한다. 그런데 까만 고글 너머 오랜 시선 끝에 들어온 것은 알고 보니 고라니였다고 말한다. 개 같은 고라니. 너무도 경쾌한 걸음으로 이른 새벽부터 제 세상인 양 총총총 뛰는 고라니. 그런데. 하고 그는 말을 끊었다. 그런데 말이지. 그때 대형 버스가 바로 곁을 스치듯 지나 하마터면 고라니는 그 발랄한 걸음으로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으로 갈 뻔했다고 말을 이었다. 아슬한 그들의 스침을 상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생각한다.

왜 고라니는 그 넓은 길을 건너려 했을까. 곧 스스로의 속말에 떠름하다. 생각을 끊어낸다.

원래 그 길의 주인은 그들이다.



그 며칠 전의 개 같은 고라니가 지금에야 생각나는 건 왜일까. 새로 피어나는 작은 생명인 아윤이의 손을 잡고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걸으면서 나는 왜 고까짓 고라니의 발걸음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을까. 삼각형의 두 면을 그리며 하늘을 나는 새들의 발랄함 탓일까.



다시 쓴다.

나는 도시 섬에 산다.

그리고 나 역시 가끔 불평한다.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고.

고작 4년 전에 이곳에 온 주제에 말한다.

탕탕한 바다의 한 조각 정도의 파도만 알면서 바다를 알고 섬을 안다고 말한다.

새와 고라니, 꿩의 오랜 자리를 빼앗고는 그들의 마음도 모르고.



언젠가 아윤이의 손을 잡고 얘기해 줄 것이다.

저 산과 하늘은 짹짹이 집이야, 우리보다 훨씬 오래 이곳에 살았지.

이 섬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과 시간의 퇴적이 쌓여 자리한 모두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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