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야 궁금해지는 말들에 대해서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라고 윤희는 말했다. 내 어린 딸이 언젠가 할법한 말이 어떤 맥락도 없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대화는 곧 다른 물살을 타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분홍색 샤프심 같이 쓸데없지만 예쁘고, 있어도 나쁘지 않은 화제들로 들썩였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 그녀가 문장을 떠올린 방식처럼 나 역시 불현듯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아윤이는 나중에 엄마가 작가라고 말하겠지요. 가벼운 미래예지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말투였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 뒤 비슷한 문장을 한번 더 말했다. 의아했다. 왜 또 말할까. 저 문장에 암호처럼 풀어야 할 어떤 의미가 숨겨진 걸까.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말이 비행기 모양으로 고이 접혀 내 속에 날아들었다. 하지만 문장은 곧 서로 간의 안부를 묻고 누군가의 여행을 듣는 사이 있는지도 모르게 낙하했다.
그냥 그런 말들.
그냥 하는 말들.
하루에도 수없이 내뱉는 말들 중 반 이상을 차지하는 습관적인 말들, 식사 뒤 당연스레 따라오는 커피의 잔처럼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말들, 유독 오른쪽만 닳는 자주 신는 신발의 밑창처럼 무의식적이고 익숙한 말들. 뭐 그런 거겠지, 별 생각이 없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윤이는 나중에 엄마를 작가라고 말하겠구나, 하는 생각이요.
교차로의 신호등을 기다리는 무수한 빨간 후미등을 보다 윤희의 말이 다시 떠올랐고 생각은 이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작가란 무엇일까. 지나고 나서야 떠올려지는 말들이 있다. 듣는 당시에는 일말의 진동도 없던 말들이 지나고서야 지독한 여진을 남긴다.
한 달 전 독립출판으로 첫 책을 냈다. 그래선지 너스레를 떨듯 작가님, 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다. 반장난의 호칭이다. 작가님, 에이 작가님. 어쩐지 약도 올랐다. 사실 책을 내기 전에는 글을 쓰는 모두가 작가라 여겼다. 자신의 시간과 단어를 담아 글로 완성하는 행위 자체를 존중했고 그런 시간을 살뜰히 보내는 나를 위로하고픈 마음이었다. 그런데 정작 책을 내고 계속 글을 쓰려니 그 무게가 다르고 내 모자람이 보인다. 독립출판을 했다고 작가반열에 올랐을까란 생각 자체만으로도 부끄러워진다. 책을 직접 만들어서인지 더 그렇다. 이제는 누구나 어떤 제재도 검열도 없이 혼자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다. 조금의 번거로운 과정만 더하면 ISBN까지 받아 국회 도서관에 납본도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한 달도 안 걸릴 일이다. 그렇다면 그런 단계를 거쳤다는 것만으로 누구나 작가가 되는 건가? 책만 썼다면 너도 나도 작가인 건가? 애초에 작가란 무엇인가(일명 작가라고 하면 여러 예술가가 있지만 나는 여기서 문학가 writer를 말한다). 이어지는 물음에 갑자기 '작가'의 정의가 궁금해져 나무 위키를 찾고는 아, 이거다! 싶은 설명을 찾았다.
'보통은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하는 프로에게 사용된다.'
'보통'이라는 애매한 명사를 제외하고 보면 작가는 직업으로 하는 프로에게 사용되는 말이라는 거다. 그거였다. 타자의 지불 없이 혼자 글을 쓰고는 또 타자의 지불 없이 혼자 출판한 나를, 거기에다 고작 한 권의 책을 낸 나를 작가라고 칭하기에는 한참은 이르다는 기분. 물론 출판한 책은 어엿한 하나의 단행본으로 수십 군데의 독립서점에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아직 스스로를 작가라고 하기에는 역시나 불편하다. 책을 한 권 냈지만 그뿐, 글밥으로 먹고 살기에는 아직 멀었고 글을 쓰는 시간도 터무니없이 모자란 탓이다. 또 여기서 생각은 이어진다. 그렇다면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 물론. 그럼. 오브코스 Of course. 대답은 질문에 당연한 듯이 따라붙었다. 안녕? 응, 안녕. 쑥스럽지만 반가운 아이의 인사처럼 조심스럽지만 신속하게.
그 모든 생각의 끝에 그녀의 말이 매달렸다. 늦은 저녁의 불분명한 저의를 어두운 밤까지 끌고 들어왔다. 정작 그녀가 실제의 말을 두 번이나 할 동안 살짝의 관심도 주지 않던 단어와 문장이었다. 뭐였을까. 책 한 권을 낸 것도 그만큼 의미 있다는 뜻이었을까, 혹은 내가 그때까지도 글을 쓸거라 생각한다는 뜻이었을까. 몇 번을 꺼내 다시 들여다봐도 알 수 없었고 지금으로도 알 수 없지만 사실 이제는 상관없다. 그 어느 쪽이든 그녀 안의 응원만은 알 수 있는 데다 이걸로 새삼스럽고 개인적인 '작가'에 대한 정의와 의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게 고작 아이의 인적사항 엄마의 직업란에 '작가'라고 쓰는 단순 한 줄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자, 쏟아내야 할 시간과 단어만이 내게는 남았다. 아마도 이제 적당한 자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나중에 아윤이는 엄마가 작가라고 말하겠지요. 지나치다 모과가 떨어지듯 툭하고, 불쑥하는 말들은 어떤 모양으로든 끝내는 필요했던 말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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