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빛이 발광하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요. 아주 작고 작은 그들이 내는 하나의 화음, 혹은 무한히 이어지는 비둘기의 합창 같은 소리를요. 꾸꾸루꾸꾸 꾸꾸루꾸꾸 cucurrucucú cucurrucucú 마치 몇 마디의 도돌이표로 반복되는 소품곡처럼 그들의 노래는 낮게 울립니다. 처음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들은 너무 작고 그들의 목소리는 한참을 귀 기울여야 간신히 들릴 정도로 무음에 가까운 진동과 음을 지녔으니까요. 그래도 그들은 노래합니다. 누가 듣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아요. 그들의 노래는 들려주는 것이 아닌 부르기 위한 것이니까요. 자신의 일을 즐기는 자가 흘리는 콧노래 같은 것이지요.
그들은 화면 앞의 당신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지난 당신과 다가올 당신까지도요.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단정도 평가도 짓지 않아요. 다만 그랬고 그렇고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대로 둡니다. 오로지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여기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써나갈지 지켜보지요.
고개를 돌릴 때 스치는 당신의 눈빛을, 자판에 손을 올리는 당신의 주저를, 일렁이는 문장들 끝에 터지는 작은 한숨을 그들은 지나치지 않습니다. 당신이 환한 글을 낄낄거리며 적을 때 그들은 알맞은 자음과 모음을 고르며 함께 유쾌한 춤을 추고, 당신이 언젠가 묻어 둔 침잠한 기억을 간신히 꺼내 적을 때 그들은 당신의 떨리는 손등과 손가락을 가만히 끌어안기도 해요. 그저 우리가 보지 못할 뿐 그들은 우리의 문장과 호흡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곁에서 지켜봅니다. 조금이라도 당신이 그로 인해 더 가벼워지기를, 더 멋진 문장의 성城이 완공되기를 누구보다 바라면서요.
간혹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몸에 맞는 넉가래나 삽, 바늘과 실을 들고 서로의 의견을 내놓기도 해요. 이 문단은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게 어떨까, 문장을 조금 가볍게 가도 좋을 것 같은데. 그들끼리 의논하기도 합니다. 모두의 의견이 일치해서 아, 이건 아닌데 싶을 때는 당신도 모르게 살짝 오타를 집어넣기도 해요. 다 함께 손가락을 미끄러트려서 말이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자주 있진 않아요. 그들 모두 같은 수많은 문장을 읽지만 각각 다른 주장과 감상을 하거든요. 당신이 지난밤 써 놓은 글을 두고 어떤 작은 이는 평범하고 뻔하다고 하지만 또 어떤 작은 이는 그래서 좋다고 하거든요. 그들은 그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둥글게 손을 잡고 골몰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페이지 맨 앞단에서 점멸하는 커서 cursor를 두고 무력하게 응시할 때이지요. 당신은 두렵기도 괴롭기도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해해요. 그럴 때 그들은 모입니다. 모니터 뒤, 자판 옆, 당신이 쌓아둔 책 위에 흩여져 있던 그들이 한 군데에 모여요. 바로 당신의 앞, 희게 빛나는 화면 아래 어딘가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합니다. 삽을 든 작은 이는 주로 먼저 흰 여백을 치우자고 말하는 쪽입니다. 눈을 밀어내듯 흰 공간을 어떤 문장으로든 가득 채우자고요. 백지는 인간을 슬프게 할 뿐이니 뭐가 됐든 치우자고, 쌓인 눈처럼 흰 공백을 밀어내자고 말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요. 그러나 곁에 선 또 다른 작은 이가 아니야,라고 말해요. 그의 손에는 실과 바늘이 있습니다. 이전에 쓰고 버린 글들을 다시 한번 이어 보는 건 어떻냐고 합니다. 지나온 문장을 씨줄과 날줄을 다듬듯 엮으면 새로운 멋진 글이 나올 거라고요. 또다시 고개들이 끄덕입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글을 쓸까 고민이 될 때면 기억하세요. 당신은 절대 혼자 고뇌하지 않아요. 그들이, 작은 손을 모으고 작은 머리를 데굴데굴 굴려 당신이 꺼낼 첫 문장을 누구보다 고민하고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아마 당신은 문득 어떤 단상이나 문장이 불현듯 떠오른 경험이 있으실 테지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던 구상이 한낮의 번개처럼 느닷없게 번쩍, 하고 찾아온 경험이요. 그럴 때 숨을 죽이고 가만히 멈추면 그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꾸꾸루꾸꾸, 화음 섞인 합창 혹은 낮게 낄낄거리는 웃음이나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움직임, 아주 작은 그들을요.
그들이 보고 싶나요.
그러면 일단 앉아요. 문자 곁을 지나던 그들이 당신 곁에 하나 둘 자리를 지킬 거예요.
그리고 쓰세요. 홀가분해진 당신의 얼굴은 그들의 춤이 됩니다.
저는 이제 마지막 문장을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긴장을 풀고 키보드 사이사이에 앉아 있는 그들을 향해 웃어요. 내 곁에서 단어와 문장을 함께 적어 내린 그들에게 보내는 나의 작은 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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