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by 윤신



잠을 설치는 밤이 늘었다. 오른쪽 왼쪽, 그리고 다시 오른쪽. 몸을 틀며 도로 꿈의 빈자리로 들어가려 해도 새벽 특유의 척척한 생각다발은 이미 방안을 가득 적시고 가끔은 물의 결정처럼 나의 몸 어딘가로 떨어진다. 눈두덩이 위로, 손끝으로, 발가락 사이로, 대부분은 하루 중 수많은 말을 뱉어내는 입안으로. 삼키지 않으려 숨을 참아도 착실하게 입을 벌리며 들어오는 생각을 이길 수는 없다. 치간을 지나 혓바닥, 목젖, 후두를 지나 안으로 안으로. 그렇게 가족이 잠든 새벽 오도카니 앉거나 누워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어제나, 수중에 잠긴 잠수교 같은 내일을 생각한다. 왜 그때 그렇게 얘기했을까, 혹은 못했을까. 시기적절하지 못한 말과 마음들을 덤이다.


자다 깨어난 정신은 아직 어둠 속에 흐트러져 있지만 입으로 밀려들어온 생각은 꼬리를 문 우로보로스처럼 끝이 없다. 십분, 삼십 분, 어쩌다 세 시간. 어떤 날은 쉽게 생각의 꼬리를 끊어내지만 어떤 날엔 턱에 힘을 가득 주고 생각을 씹어댄다. 나는 생각을 물고 놓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 역시 나를 물고 놓지 않는다. 나와 생각은 같은 몸을 공유하며 서로를 탐한다. 그리고 거기에 술처럼 꿈이 섞여 들어간다. 깊은 무의식 저변에서 나도 같이 놀자, 꿈이 말한다.


며칠 전 악몽을 꾸었다. 아파트가 양옆으로 길게 나란히 선 길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데 그 위에서 아이가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떨어졌다. 한 명, 두 명, 세 명, 계속해서 아이들은 조금은 흥겨운 듯 자진해서 떨어졌고 나는 선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목 뒤가 뻐근하고 소름이 돋았다. 누구와 걸었던 것 같은데 누구인지 모르겠다. 어떤 배경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모르겠다. 그저 아파트와 아이들. 떨어진 한 아이를 누군가 안았다. 아이에게서는 피가 나지 않았다. 살아있을까. 궁금했지만 가까이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파트는 이 삽 십 층은 족히 되어 보였고 아이들은 계속 떨어졌다.

꿈에 깨어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 뜰 수 없었다. 얕은 소름이 온몸에 돋았고 심장은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 누운 자리에서 숨이 거칠어졌다. 눈을 뜨면 뭔가가 보일 것 같아 감은 눈을 더 세게 감았다. 왜 이런 꿈을 꿨을까. 겁에 질린 아이처럼 울고 싶어졌다. 정말이지 왜 이런 꿈을 꿨을까. 이때를 비집고 생각은 입안을 파고들었다. 꾹 다문 입술을 벌리고 머리를 집어넣고 몸을 들이밀었다. 죽은 물고기의 것처럼 축축하고 비릿한 생각들. 두세 시간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거머리들. 악몽보다도 나를 더 괴롭힐 망상들. 그러나 나는 어떡해도 자신이 없었다. 그 꿈에 다시 들어갈 자신이.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1. 이 꿈의 일반적 해석은 무엇인가.

2. 꿈에 나오는 인물 모두 나를 투영시킬 수 있다. 보는 사람, 떨어지는 사람 모두.

3. 꿈은 시제 감각이 없으니 몇 개의 사건이 섞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4. 이 꿈의 공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핸드폰 조도를 낮춰 꿈 해몽을 알아봤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꿈은 추진하는 일이 중단되거나 성과 없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혹은 불안하거나 자존감이 부족한 시기라는 것이다. 흠, 그럴 수도 있겠는데. 얼마 전부터 쓰는 글의 양과 질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급한 상태가 이어지던 참이다. 잘 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게다가 충동적으로 첫 독립출판 책을 낸 이후 글에 대한 마음이 무거워졌으니 이 해석이라면 1과 2가 동시에 들어맞게 된다. 떨어지고 땅에 부딪히는 사람 역시 내가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렇다 쳐도 이건 너무 괴기스럽지 않나. 아이들의 희멀건 피부색까지 기억되는 꿈이라니. 여기서 3번. 몇 개의 사건들이 내 무의식에 섞인 것은 아닐까 머리를 뒤져본다. 그리고 딱 두 개가 떠오른다. 고개를 탁, 흔들어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괴로운 것이.


한두 달 전인가 어느 아파트에서 부부가 싸우다가 남편이 홧김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정도로 화가 나야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그 화는 단 한 번이 아닌 지층처럼 차곡히 쌓인 것이겠구나, 그렇지만 거기서 뛰어내리면 어떡해 따위의 생각을 했다. 아마 아파트 투신이라는 조건은 거기서 연유했을 거라 짐작한다. 이십 층에서 뛰어내릴 정도의 화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를, 싸우던 한 사람이 떨어지고 나서 남은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를, 그리고 밤 열한 시 즈음 그 근처를 산책했을 사람들의 충격은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것들을 몇 번이나 쓸데없이 진지하게 생각했으니까.

그렇다면 떨어지던 아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익명의 몸들. 그저 하얀 살에 단정히 옷을 입은 어린 몸들은 어디 즈음에서 찾아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단서를 모르던 나는 다음날 아침 시뻘게진 눈으로 검색창 배너를 봤다. 하얀 국화와 ‘사망자를 애도합니다’라는 한 문장이었다. 벌써 일 년이구나. 말도 안 되는 비극이 있었던 그날에서 벌써 일 년이 지났구나.


마스크와 거리 두기에서 벗어난 것에 기뻐하던 즈음이자 때마침 핼러윈을 앞에 둔 토요일이었다. 그날 아마도 잠든 아이 곁에 누워 있다가 물이라도 마실까 방을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나를 본 그가 나에게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것 봐. 이게 실제 상황이래. 뭔지도 모르고 작은 화면의 고통스럽고도 시끄러운 침묵을 바라봤다. 누워 있는 몸들. 웃음들. 슬픔들. 흔들림들. 나는 거짓말, 이라고 했다. 거짓말하지 마. 이게 진짜 일리 없잖아. 그러나 결국 진짜였던 그 영상에 난 한참이고 괴로워했다. 떠올라서, 눈을 감아도 그 영상의 몸들이 떠올라서였다.


아직도 많은 말들이 오고 간다. 그 가운데 슬프다는 말과 네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는 말이 가장 크다. 잘은 모르지만 둘 다 이해는 된다. 슬프다는 것도 네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도 모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이 글은 그런 얘기가 아니다. 나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그날 본 영상에서 각인된 무언가가 딱 일 년 뒤 꿈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었으리라 짐작하는 이야기다. 꿈이 남긴 슬픔과 공포가 그때의 것과 닮았고 영상에서 본 질감이 꿈에서의 것과 같았다. 다시 심장이 빠르게 뛴다. 왜 인간은 쉽게 볼까. 쉽게 들을까. 왜 쉽게 말할까.


사람은 다르다. 아픔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묻어두는 사람이 있고 꿈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결국 잠을 설치고 생각을 물어뜯고 몰래 꿈을 꾸는, 그런 사람. 아직도 난 후회한다. 왜 그걸 봤을까. 다음날 모든 영상이 사라졌다. 적어도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곳에서는 사라졌다.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공유가 금지되었다. 더는 나 같은 사람이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생각했다.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잃은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하나. 소리를 듣고 남은 자리를 쓸고 침묵을 견디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건 악몽으로만 끝날 일인가, 끝낼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이 글을 일주일에 걸쳐 쓰고 있다. 몇 문단을 쓴 하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생각들이 떠올라서였다. 생각들. 꽉 문 어금니를 벌리고 머리를 들이미는 생각들. 공허들. 슬픔들.


악몽은 깨어난다.

나의 불면의 밤도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실은 폐허는 생의 믿음은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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