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을 사랑하고 싶다. 차마 읽지 못하고 빛에 비추고 만지작거리다 조심히 열어보는 누군가에게 받은 다정한 편지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싶지 않아 느리고 긴 유예하는 독서를 하게 만드는 책처럼. 눈 오는 날 몸을 둥글게 말고 한낮의 잠을 청하는 고양이의 게으름처럼. 내가 쓴 글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다.
계절을 달력이 아닌 몸으로 느낀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몸이 굳고 열이 난다. 그리고 그 핑계로 글을 멀리 한다. 아니, 글을 멀리하진 않는다. 쓰는 것을 멀리하고 읽기만 한다. 지금은 비비언 고닉의 '멀리 오래 보기'와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 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고 있다.(어쩌다 다 여자 작가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글에 베일 듯 조심히 책장을 넘기면서 역시 책이 참 좋구나, 하고 생각한다. 새로운 작가의 시선과 해석, 차고 흐르는 지적인 사고를 이렇게 쉬이 접할 수 있다니. 이런 글들이 아니었으면 나라는 사람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그런데 희한하게 읽고 있는데도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난다. 책에서 나온 책들, 책에서 나온 책을 검색하다 알게 된 책들, 작가의 다른 책들. 한동안 동면에 든 곰처럼 동책(冬冊)에 들지도 모르겠다.
섬에 한나절 눈이 내린다. 아침부터 내리더니 늦은 오후까지 쉬다 말다 할 뿐 그칠 생각은 없다. 정오쯤 요가를 다녀오며 눈을 밟았다. 발아래에 뽀득대는 소리와 우산 위 서걱대는 소리. 문장 속에 눈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마 그럴 수는 없겠다고 또다시 생각한다. 이것은 압도다. 희고도 빛나는 다각의 결정에서 나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흰 눈이 동공을 채운다. 눈을 감아도 눈은 내 두 귀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눈의 옅고 차가운 장밋빛 냄새. 그것은 욕망처럼 나를 씹고 핥고 삼킨다. 눈은 내 안에서 휘몰아치고 나를 희롱한다. 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나의 아름다움에게서.
눈 설雪. 부수는 비 우雨에 그 아래 돼지머리 계 彐가 있다. 웬 돼지머리 계 하며 찾아보니 그 한자라 아니라 살별 혜彗의 축약 버전이라고 쓰여 있다. 그래서 원래 글자는 설䨮. 살별 혜는 혜성과 빗자루를 뜻한다고, 그래서 비 혜라고도 부른다고도 한다. 혜성처럼 떨어지는 비. 물방울이 아닌 어떤 형태를 지니고 하늘에서 가득 떨어지는 비. 이 글자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은 눈을 그렇게 본 것일까. 밤하늘 대신 환한 낮에 떨어지는 혜성의 빛이라고.
참, 돼지머리 계는 고슴도치의 머리라는 뜻도 있다. 고슴도치의 작고 뾰족한 머리통 위로 눈이 쌓이는 상상을 하니 귀엽다. 부르르 떨어도 가시 사이에 남아있을 흰 雪.
고마운 사람이 선물한 몽크 사탕을 우물대고 있다. 오늘도 쓰려던 글은 쓰지 못했고 곧 저녁이니 쓰지 못할 것이고 내겐 자기 전 한 시간 정도 책 읽을 여유만 간신히 남아 있을 것이다. 눈은 그때까지 내릴까. 어두워도 자신을 끊이지 않게 드러낼까.
내가 너의 시야에서 사라진다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겠지. 나를 보지도 듣지도 맡지도 않을 테니까.
아니야. 이미 너는 내렸고 내리고 내릴 것이니까.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가 쓴 글을 눈처럼 사랑하고 싶다. 저 멀리 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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