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저주

by 윤신



쓴다 쓰지 않는다. 가끔은 여름철 쏟아지는 태양에 저절로 땀이 흐르거나 가끔은 겨울의 얼어버린 눈처럼 단단해질 뿐.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흐름의 문제. 나라는 인간의 섭리 혹은 생겨먹은 모양. 개개인이 뱉어내는 무수한 숨 가운데 검고 길게 번지는 나의 잉크의 숨. 잉크의 날씨. 잉크의 여자의 몸. 잉크의 신경질증.


아니 어쩌면 이건 병일지도 몰라. 아빠의 저주일지도.


어쩔 수 없는 쾌감. 이것은 쾌감을 닮은 발산 혹은 배설. 반복적인 행위에서 오르는 절정, 손가락을 타고 뇌수로 이어지는 오르가슴. 뭘 쓴 지도 뭘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다만 쾌락을, 게워내는 행위만을 추구하는 변태일지도. 손을 목구멍으로 집어넣어 내장을 휘젓고 천천히 꺼내 당신에게. 알지 못할 당신. 안다고 착각할 당신. 읽을 당신. 읽지 않을 당신. 이따위 것 아무것도 상관없을 당신에게 곱게 포장한 나의 심장을 폐를 혀를. 오직 당신에게. 거짓말. 잉크의 시커먼 거짓말.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한 의식이자 자위.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고 한 손은 가슴을 다른 손은 벌어진 그곳을. 오직. 나를. 위해. 나를 파고 나를 묻고 나를 헤쳐대고는 쓰러지는.


쓰러진 바깥. 바깥의 냄새. 바깥의 소리.


그것은 먼지처럼 흩날리는 눈과 흐린 하늘. 사람들의 쓰이지 않을 말. 기억되지 않을 낮과 젖은 콘크리트 냄새. 명멸하는 트리의 알전구, 아이의 웃음, 무화과 베이글이 구워지는 시간, 마티스가 그린 하트 러브, 얼마예요? 묻고 기다리는 정적. 점점 더 굵어지는 눈발.


결코 떨어트릴 수 없는 밖과 안의 경계에서 나는 계속 쓰고 쓰지 않을 테고 쓸 테고. 아무 상관도 없는 당신이 읽거나 읽지 않을 잉크의 숨을 나는 자꾸만 뱉어낼 테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닐. 면면에 닿아 부서질 햇빛, 녹아 증발할 눈, 어른이 될 아이, 발화될 잉크. 생에 한번 날개를 활짝 펼 나비.


쓴다 쓰지 않는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흐름.

아니면 그저 고질병. 혹은 아빠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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