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0
뽀얗고 뺨이 복숭아빛인, 갈색 배냇머리를 가진 60cm의 작은 아가가 내 품에서 곤히 자고 있다.
이 가슴 멎도록 사랑스런 아이가 내 딸이라니, 계속 삶을 함께 살아나갈 사람이라니.
아직 믿기지가 않는다면 어떤 이는 놀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현실감각이 없다. 내 배가 그렇게 불렀던 시간이나 아기를 낳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의 합집합도 다 잊고 그저 이 작은 생명체가 어디선가 뚝, 떨어져 우리에게 온 것만 같다. 생긋생긋 잘도 웃는 애기가 그 웃음으로 새들에게 히치하이킹을 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닐까. 제일 가능성 있는 가설은 찹쌀떡이가 어딘가에서 데려온 거라 그에게 매일 물어보기도 한다.
“찰떡이 어디서 데려왔어?”
그럴 때마다 그는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아, 또 시작이구나.’ 그의 마음이 들린다.
하여튼 요 작은 녀석 때문에 비몽사몽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사실 마무리라 할 것도 없다. 토막잠을 잘 때도 꿈에서까지 찰떡이가 나와 으앵으앵 울기 때문에 24시간 내 머릿속과 실체에 붙어있다 말할 수 있다. 태명처럼 ‘찰떡’같이. 그러니 엄마의 시간(하루의 반복)은 분절된 것이 아니라 낮밤이 바뀌는 연속적인 것이다. 애초에 시간의 개념이 그러하듯이.
믿기지 않은 채로 50일이 지났고 또 우리의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다. 사실 모든 순간이 행복으로 차있진 않다. 힘들고 지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적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건 아이의 웃음과 냄새, 존재 자체가 고맙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여전히 온전히 믿기지 않지만 이 아기는 나의 딸이다. 내 소중한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찹쌀떡 군과 셋이 손잡고 걸어 나갈 우리 딸.
찰떡아,
엄마는 처음이라 서툴지만 노력해볼게.
네게 멋진 엄마가 되도록.
그리고 당장은 고양이와의 네 낮잠을 지켜줄게.
빠샤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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