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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은 죽지 않습니다

by 윤신


목련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가지 끝에 맺힌 겨울눈을 봅니다. 수목은 멀리에 있지만 나는 그것이 목련임을, 겨울밑 아직 피지 않은 꽃의 시간을 위해 희고 가는 털이 안밀安謐히 돋아있음을 운명처럼 압니다. 알아버립니다. 어떤 것은 설명도 의심도 없이 우리 앞에 섭니다. 저들의 자리와 존재를 알리지 않아도 우리는 알아채고, 우리가 안다는 것을 저들도 알고 있습니다.

공기의 떨림과 빛의 전율, 곁든 시선.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압니다.


목련은 꽃이 먼저 핍니다. 어떤 봄의 꽃들은 그렇습니다. 잎보다도 꽃을 먼저 피어냅니다. 망울이 피어날 때 고개를 북쪽으로 돌려 북향화라고도 불리는 목련 역시도 맨 가지에 탐스러운 얼굴을 그득히 내밉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는 오래된 길목에도,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의 이층 난간에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보기 드문 놀이터의 한 모퉁이에서도 목련의 꽃잎은 있는 힘껏 벌리고 벌려 제 몸을 펼칩니다. 그가 늘어트린 몸이 무용수의 몸짓처럼 무서울 만큼 우아하다고 가끔 저는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내 앞의 목련은 아직 겨울눈이 그대로 있습니다. 꽃눈과 잎눈. 이토록 멀리서도 보이는 것은 아마도 꽃눈일 테지요. 겹겹의 옷을 입고 겨울잠을 자는 꽃은 내가 이 자리를 떠난 며칠 뒤에야 잠에서 깨어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누가 알아보든, 알아보지 않든. 꽃은 무릇 언젠가는 피어나기 마련이라면서요.


부끄럽지만 한때는 꽃이 지면 꽃이 그만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 고양이에게 물려 죽었던 한쌍의 백문조처럼 그만 죽어버리는 줄로 알고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똑똑 분지른 꽃의 목을 보고 꽃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 다시 그 자리에 꽃이 피었습니다. 꽃의 부활. 오래되고 새로운 탄생.

꽃은 죽지 않습니다.


이제 목련이 보이던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걷습니다. 갈라지고 내뻗는 길이 꼭 목련 가지를 닮았다고 눈썹차양으로 그늘을 만들며 생각합니다. 빛이 꽤 눈부십니다. 당분간은 길도 목련도 죽지 않을 것 같습니다.




with 이 노래

- Anna Magdalena notenb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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