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를 먹어야 오랜 감기가 낫는다는데
배시시 얼굴을 찡그려 웃는 나를 보더니
됐다 그냥 칼국수나 먹자
아니다 두부전골이나 먹자
근데 소는 먹으면서 흑염소는 왜 안되니
그녀가 묻고
이상하게 그래, 흑염소는 좀 그래
나는 대답하고
흑염소의 가로진 동공을 생각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전골 국물을 퍼먹다 언니 근데 진짜 맛있다 두부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 것 같아 두부의 생살에는 피도 죽음도 없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우린 푹푹 흰쌀밥에 시뻘건 물이 든 두부를 얹어 먹는다
사람들은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데
시인들은 그렇게 죽음을 쓰더라
하긴 흑염소도 죽고 마는데
시인도 사람도 죽고 말 텐데
언니가 간 남쪽 지방에는 목련도 무엇도 다 피었다더니 여기는 반쪽의 봄만 피어서 반쪽의 봄만 발끝에 태어나서 감기도 안 낫고 그렇지만 흑염소는 먹기 싫고
그래도 전골이 있잖아 뜨거운 전골이 안을 다 덥힐 듯 펄펄 끓고 있잖아
국자로 크게 뜬 전골을 멜라민 그릇에 담고
죽어버린 두부와 죽어버린 버섯과 죽어버린 민물새우를 담고
캬 민물새우가 잘 우려 나서 국물이 시원하다 무서운 소리를 하고
먹어야지, 뭐든 먹어야 감기도 낫지 그런 생각이나 하고
그런데 언니 난 소고기를 삼키지 못할 때가 있어 뱉고 싶어도 꾸역꾸역 삼켜야 할 때도 있어 그것도 자주 자주 씹어야 하는 것이 고기가 아닌 타인의 살인 것만 같아서 울컥 목구멍으로 다시 치솟을 때가 있어
해는 따사롭게 풀을 비추고
아마 콩도 소도 흑염소도 비추고
우리는 미지근한 국물을 식어버린 두부를
먹어야지, 죽을 땐 죽더라도 먹어야지
꼭꼭 씹어 제단에 바칩니다
언니 근데 진짜 맛있다 감탄하고
남의 살을 먹지 않으면 좋겠다 후회하면서
콩의 살을 버섯의 맨살을 민물새우의 껍질을 야금야금 뜯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죽이고
살고 또 살고
있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