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는 채소고 아보카도는 과일이고

by 윤신



뭔가를 쓰려했지만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쓰려했다는 사실과 두 개의 단어만 얼핏. 과일의 조합 아니면 생뚱맞은 단어의 무작위 열거였던 거 같은데.


가지와 꿀, 소금빵과 레모네이드, 만다린과 귤, 다정과 새끼손가락.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것을, 그것이라고밖에 칭할 수 없는 그것을 날씨가 계절을 토하듯 꺼냈다. 찻잔과 모자, 현상과 거울, 탁자와 액자, 또다시 과일로 돌아가서 자몽과 토마토. 그런데 토마토가 과일이었던가 채소였던가 그것만은 늘 헷갈려서.


검색해 보니 토마토는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이지만 주식의 주재료이기에 채소라 부르기로 1893년 미국의 대법원에서 정했단다. 그런 걸로 대법원까지 갈 일인가 싶지만 어쨌든. 인간의 사정으로 과일로 태어나 채소로 사는 토마토다. 결국 사람들의 편리와 이익에 따른 정의가 태생보다 중요한가에 생각하다가 하기야 과일이니 채소니 애초에 인간이 부르는 이름인가 하다가. 아니 근데 뭐였더라. 분명히 두 개의 단어였는데. 잠에 빠져들기 직전 휘갈기듯 머릿속에 그어진 단어는 분명 과일의 냄새를 하고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었는데. 일어나면 기억하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되뇌었는데. 그것은 무소음과 시계, 양과 낮잠, 아니 과일이었으니까 참외와 여름, 아보카도와 배. 여기서 아보카도는 과일이고, 과일은 나무에서 나는 열매고 채소는 풀에서 나고. 이렇게 생각은 또 저 멀리멀리 파도에 밀려가고.


두 개의 단어는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고 나는 그것을 처음부터 알았다. 떠올려지지 않을 것을 알고도 떠올리려는 마음. 잡히지 않을 것을 알고도 붙잡으려는 마음. 그 안간힘. 나는 주로 그 힘으로 뭔가를 쓰고 또 밀려가고 다시 쓴다. 그러니 이러는 것도 오늘 처음은 아니다. 나는 매일 잊어버리고 떠올리고 이어 붙인다. 그러니까 토마토는 채소고 아보카도는 과일이고. 이렇게, 이렇게만.


이 글의 초고를 쓰고 6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수업하는 시 선생님과 퇴고를 했다. 시로 바꾸는 일은 덜어내는 일이라고 여백에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많이 던 것의 반만큼 선생님이 또 덜었다. 시 수업은 다음 주면 마지막이다. 서운하고 후련한, 마지막을 대하는 비슷한 마음. 하지만 그렇게 또 이어지는 거지. 잊어버린 수많은 이름처럼 어디선가 떠오르고 다시 가라앉고 아마도 그렇게.



제목 미정



가지와 꿀

소금빵과 레모네이드


만다린과 귤


다정과 새끼손가락


여자는 쓰려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두 개의 단어 그것은 과일의 조합

어쩌면 무작위의


찻잔과 모자 현상과 거울 탁자와 액자


날씨가 계절을 토하듯 여자는 단어들을 꺼낸다

자몽과 토마토

토마토가 과일이었던가


채소였던가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지

그 두 개의 단어는


고양이가 다가와 여자의 무릎을 머리로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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