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입은 여자

by 윤신



문장을 입은 여자가 그의 곁을 지나갔다. 몸이 다 드러나도록 오직 몇 개의 문장만을 입고 있는 여자였다.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낱말이 발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떨어진 낱말은 액체의 잉크가 되어 고이거나 낮은 곳으로 흘렀다. 그는 그녀를 몰랐다. 얼굴도 이름도 손톱도 눈썹도. 그러나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럴 수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만큼은 선명했다.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말이 되나. 그는 자문하며 일어섰다. 모든 건 그녀를 마주하면 알 것 같았다. 여자의 몸에 적힌 문장을 읽으면 조금이라도 알 것 같았다.


그는 달렸다. 그러나 그녀의 걸음은 무척 빨랐다. 그는 달리며 그녀가 떨어트린 말들을 하나씩 주워 삼켰다. 읽어야지. 그녀를 읽어야지. 오직 그 생각만 했다. 이제 곧 잡을 것 같은데.


조금만, 조금만 더.


여자 어깨에 늘어진 문장 하나에 손끝이 닿는 사이, 남자는 그만 꿈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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